거실 노트북 위에 6만엔이 놓여있었다.
2만5천엔은 여행경비로 우리가 매달
적립하는 돈인데 나머지는 무슨 뜻인지 몰라
샤워하고 나온 깨달음에게 물었다.
[ 이거 뭐야? ]
[ 지난번에 외식할 때 당신이 너무
많이 부담한 것 같아서 돌려주는 거야 ]
[ 아니야, 내가 사고 싶어서 낸 거야 ]
[ 알아, 그래도 그냥 받아둬 ]
지난달 외식을 많이 했던 건 사실이다.
퇴근시간이 얼추 비슷하거나 외출 장소가
가까우면 번개팅처럼 그냥 만나서
간단히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곤
하는데 그 때마다 매번 깨달음이 계산을 했고
지난달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내가 지불한 건데 왜 돈을 돌려주는 건지,,
곧 다가 올 발렌타인데이에도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해서 약간 신경 쓰였는데
받아야 할지 괜스레 복잡해졌다.
점심시간에 깨달음에게
저녁을 사겠다고 메시지를 보냈더니
좋다면서 피자 먹고싶다는 답장이 왔다.
업무를 마치고 자주가는 레스토랑에
먼저 가 주문을 해 두었다.
[ 깨달음, 고마워,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돈을 받으니까 이렇게라도 당신에게
돌려줘야 될 것 같아서.. ]
[ 저축해 두지 그랬어 ]
[ 저축? 근데 이건 당신이랑 쓰고 싶어서 ]
[ 당신도 신문 읽었지? 일본인 저축한 거]
[ 응, 원래 일본인들 저축 잘하잖아 ]
[ 점점 더 심해지고 있어, 돈을 안 쓰고
무조건 저축에 묶어두니까 돈이 안 돌잖아,
다들 일본 경제가 더 이상 회복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거지..그래서
노후가 불안하니까 저축을 하는 것이고,,
GDP의 10%를 넘었다는 게 말이 돼? ]
와인을 한 모금 마시더니 내게 물었다.
[ 당신은 얼마 저축했어? ]
[ 나,,,,당신은? ]
우린 지금까지 얼마나 저축했는지 갑자기
서로를 탐색? 하기 시작했다.
깨달음은 회사 운영자금 명목으로 저축해 둔 게
있지만 자기 개인 저축은 얼마 없다고 했다.
나는 실버타운에 들어갈 금액은 있다고 하자
자기 몫으로 해 둔 저축액은 얼마인지
상당히 궁금해했다.
그리고 앞으로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현금이 필요한 건 사실이라며
임금이 전혀 오르지 않은 상태로
벌써 10년이 넘어가다 보니까 일본에 젊은
20, 30대들이 해외로 다 빠져나가고
있다며 미래가 걱정된단다.
임금은 그래로 인데 물가는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고 정규직은 그나마 괜찮지만
파견직은 정말 하루하루 연명하듯 사는
젊은 애들이 많다며 자기는 작년에 직원들
월급을 10% 인상해서 처리했지만
아직도 멀었단다.
우린 정말 저축만이 살 길인지
투자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에
왜 그렇게까지 저축을 해야 하는지
서로의 생각을 나눴다.
일본인들은 어릴 적부터 저축하는
습관이 베인 것도 있고 성격이 소심하고
신중해서 쉽게 어딘가에 투자를 해 돈을 불리지
못하다 보니 그저 현금을 쌓아두는 게
손해 볼 일이 없고 안전하다고 생각한단다.
하긴, 내 주변 일본인 친구들 경우에도
수입의 60%를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저축을 했었다.
정기적금은 물론, 보험까지 조금이라도
이윤이 있는 상품들을 찾아 악착같이
저축하는 걸 내 눈으로 직접 보았다.
몇 년 전, 군마현에서는 독거노인의 집에
쓰레기 더미를 처리하는데 검은 봉투에
담긴 4,251만엔(약 4억원) 이
발견된 일이 있었다.
또한, 고독사로 돌아가신 분들의 유품을
정리해서 나온 돈이 지난해에만도
177억 엔 (약 19,000억 원)이었다고 한다.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도 죽을 때까지
돈을 움켜쥐고 있던 사람들..
의지할 것은 돈뿐이라는 생각에
모아두는 저축 습관들,,
10년 전에는 한겨울에 동사로 돌아가신
어느 홈리스 아저씨에 겹겹이 둘러맨 복대에서
80만 엔(약 8백만 원) 이상의 현금이 나와
다들 놀랐던 기사가 있었다.
일본인이 끊임없이 저축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첫 번째가 노후 생활자금을 위해서이고
다음은 질병이나 불시의 재해에
대비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세 번째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어야만
안심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임금 상승과 소득이 늘지 않은 이상,
그 어떤 곳에도 소비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저축을 해 두면 심리적으로나마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어서
앞으로도 저축을 계속될 거라고
깨달음은 단언했다.
2020년 4월에 코로나19로 힘든 국민들에게
지원금으로 1인당 10만 엔(약 100만 원)을
나눠주었을 때도 70%을 저축으로
돌렸던 일본인들..
나도 이곳 생활을 20년 넘게 하면서
통장에 조금씩 불어나는 저축액을 보며
심리적 안정감을 느낄 때가 있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면 나역시 이들처럼
저축을 계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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