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8천보이상 걸어서
피곤한 것도 있고 그냥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인터콘티넨탈 호텔 중식당에 앉아
우선 따끈한 차를 한 잔 마셨다.
서로의 기분에 따라, 그날의 흐름에 따라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는 게 이제 일상처럼
편해졌다. 코로나로 인해 생활패턴이 많이
바뀌었고 물 흐르듯 자연스레
그 날의 분위기에 묻어가며 살기로 했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우리 둘 다 요즘은
몸을 꼼지락 거리며 음식 만드는 것도
귀찮아져 되도록이면 편하고
쉽게 살자는 쪽으로 생각을 전환했다.
빈 속에 마시는 쇼코슈(紹興酒)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며 찌릿했다.
[ 어땠어? 깨달음, 오늘 본 물건은? ]
[ 음,,, 마음에 든 게 없네...]
[ 나도 그러네..]
노후는 임대수입으로 좀 편하게 살아볼
얄팍한 계산으로 올해 들어 적당한 물건들을
찾아보고 있는데 매처럼 예리한 눈을 가진
깨달음 입맛에 딱 맞는 물건이 나오질 않았다.
우린 잠시 먹는데 집중을 하며 한참 동안
아무 말하지 않았다.
메인 요리가 나올 무렵 깨달음이 입을 열었다.
[ 한국에 새 대통령이 됐으니까 부동산 정책이
많이 바뀌겠지? ]
생각지도 않았던 질문에 좀 당황스러웠지만
나도 한국의 부동산정책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여서 뭐라 답하기 애매했다.
[ 뭐 얼마나 바뀌겠어 ]
[ 다른 것도 많이 바뀌지 않을까. 정권이
바뀌었으니 ]
[ 나,,, 정치 쪽엔 별로 관심 없어..]
우린 결혼 초에 한일 부부로서 겪는 역사적인
관점을 솔직히 터놓고 얘기를 몇 번 했었다.
하지만, 결론은 없고 그냥,, 각자의 생각들을
어필할 뿐 의견 조율이 되었다가도
또 원점으로 가는 일이 반복되면서
정치나 역사 얘기는 대화의 주제로
삼지 않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깨달음은 여러 면으로 한국에 관심이
많다 보니 정치, 경제, 문화 할 것 없이
궁금해하고 말하고 싶어 한다.
[ 당신 이번에 재외국민 투표 안 했지?]
[ 응 ]
[ 해야지. 내가 해야 된다고 했잖아 ]
[ 알아, 근데 안 했어. 둘 다 싫어서 ]
[ 그래도 해야 했어 ]
[ 알아, 그래서 지금 반성하고 있어 ]
[ 내 생각엔,,,5년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도 바뀌고 그러면 국민들이 불안하지
않을까 싶어, 그러니까 5년마다 정권교체를
하려고 애를 쓰고, 그게 반복되고 그러잖아 ]
[ 깨달음,, 나 별로 얘기 안 하고 싶어.,
특히.. 이번 대통령 선거에 대해서는..,]
[ 난,,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 ]
[ 알아,, 나도 걱정돼..]
너무 걱정돼서 말하고 싶지 않았다고 하면
투표도 안 한 사람의 궤변으로 치부되겠지만
후보자 두 분 모두 대통령이라 말하고
싶지 않을 만큼 싫었던 건 사실이다.
내 눈치를 한 번 살핀 깨달음이 그래도
이번에는 한일관계가 조금은
좋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단다.
[ 그래?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면 좋아지겠지 ]
[ 당신은 그렇게 생각 안 해? ]
[ 몰라...]
[ 근데, 좋아졌다가 또 정권 바뀌면 나빠지고
그러니까.. 그게 문제긴 해..]
깨달음이 하고 싶은 말은 한일관계보다는
5년마다 정권이 바뀌는 시스템,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라가 한바탕
피바람이 부는 그런 총체적인
한국정치 스타일이 걱정인 것이었다.
[ 깨달음, 내가 아베, 스가, 기시다 정권에 대해
별 말 안 하는 이유는 뭐라 생각해? ]
[ 몰라...]
[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당신 생각해서
안 하는 거야..]
알고 있단다..무슨 말인지..하지만 자기는
정말 한국이 걱정되고 한일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좋아졌으면 하는 마음이란다.
[ 난,, 당신이 누가 되든 촛불시위를 다시 하는
일이 생길 거라고 했던 말이 충격이었어.
다시는 촛불 드는 일이 없어야 하잖아..
국민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뽑아 놓고
또 내려오게 하고,,그게..참 아이러니
하다고나할까..외국인인 내가 봤을 때...,
근데 정말 당신 말대로 촛불을 들게 된다면
새 정부는 그걸 그대로 하게 놔둘까?
아니면 못하게 막을까?
당신은 어느 쪽이야? ]
[ 깨달음,, 한국에 관심이 많은 건 알겠는데
더 이상 내 의견을 궁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난 투표도 안 한 사람이잖아.
그니까 뭐라 말할 자격이 없어..
정말, 더 이상 묻지도 말고 궁금해 하지마.
그리고 국민이 뽑았으니 국민이 책임지고
다시 내려오게 하는 게 당연한 거야 ]
더 이상 묻지 말라고 했던 건 내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인 걱정거리들이 다 쏟아져
나와 버릴 것 같아서였다.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지 않았기에 할 말이 없다.
깨달음은 한일관계가 완화될 것 같은 기대를
갖고 있었다. 좋아지면 좋은 것이고 난 그저
예전처럼 깨달음과 내가 자유롭게 한국과 일본을
왕래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단지, 내 나라가 다시는
촛불집회를 여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지금처럼
변함없이 열심히 살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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