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을 시작으로 이곳은 약 열흘간의
황금연휴가 시작됐다.
코로나의 공포가 무뎌져 가는 요즘이어서인지
연휴를 즐기려는 사람들은 산으로 바다로
모두 떠났지만 우린 그냥 착실히
각자의 일을 하며 휴일을 보내고 있다.
눈을 뜨면 서로의 루틴에 맞춰 움직이고
깨달음은 자기 방에서 일을 하다 가끔 팩스를
보내려고 편의점을 다녀오는 게 다였다.
나는 나대로 악기 연습에 몰두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나머지 휴일을
어찌 보낼까 아침을 먹으며 얘길 나누다가
깨달음이 맵고 자극적인 게 먹고 싶다고 해
메뉴도 정하지 않은 채 코리아타운으로
무작정 나갔다.
역 앞에서부터 얼마나 사람들이 많던지,
닭강정은 닭강정대로, 호떡집은 호떡집대로
가는 곳마다 줄 서 있는 행렬들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날은 유난히 초등학생들이 눈에 띄어
의아해했더니 깨달음이 방학을 맞아
부모님들이 데리고 나왔을 거라며
한국에 못 가도 한국 온 것처럼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장소라고 했다.
인파를 피해 어느 골목에 들어섰을 때
양념게장 간판을 보고 먹고 싶다고 해서 들어가
막걸리와 함께 시켰는데 두 번 먹더니
비닐장갑을 벗었다.
만들어놓은 지 오래되서인지
신선하지도 않고, 살도 없고, 맵지도 않고
가장 중요한 게맛이 전혀 나질 않는단다.
게 살을 쭉쭉 빨아먹으며 매운 맛을
느끼고 싶었는데 색만 빨갛게 생겼을 뿐
아무맛도 없다면서 화가 나려고 한단다.
싱싱한 꽃게를 구할 수 있으면 내가
얼마든지 만들어 줄텐데 안타까웠다.
이곳 코리아타운에서 파는 냉동게로
한번 만들어볼까 싶다가도 괜스레 배탈 나지
않을까 싶어 지금껏 한 번도 시도를 하지 못했다.
좋아하는 막걸리도 반을 남긴 채 식당을 나와
집에 가자길래 당신이 좋아하는 짬뽕을
먹는 게 어떠냐고 했더니 짬뽕기분이 아니란다.
매우면서도 자꾸 끌리는 게 뭐가 있을까 검색을
하다가 지난번 티브이에서 봤던 주꾸미가 생각나
가보자고 하니까 좋다길래 다시 발길을 돌려
쭈꾸미 전문점을 찾았다.
가는 길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이들이
치즈 핫도그를 하나씩 먹고 있는 모습을 보며
코리아타운을 찾는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을 했다.
깨달음은 한국에서 먹었던 치즈 핫도그가
진짜 맛있다며 그걸 한 번 먹어보면 여기서는
절대로 못 사 먹을 거라고 했다.
주꾸미를 주문하고 소주도 한잔씩 했다.
[ 참이슬 오랜만에 마시네.]
[ 그러네..]
보글보글 주꾸미가 익는 동안 우린
말없이 소주잔만 기울이다 깨달음이 먼저
입을 열었다.
[ 블로그가 하기 싫어졌어? ]
[ 내가 맨날 하던 고민이었잖아. 그냥 일기처럼
일상을 기록한다고 생각하면 되겠지만
솔직히 일기하고는 많이 다르고,,
되도록이면 있는 그대로 써 내려가려 하지만
포장도 해야 하고 살도 좀 붙이고 순화도 시키며
써야하는데 문득 그렇게 신경을 써가며 글을
쓰는 2,3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 ]
무슨 말을 할 듯하면서 소주잔을 만지작
거리며 깨달음은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잠시 침묵을 깨고 알맞게 잘 익은 주꾸미를
한 마리 먹어보고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더니
한국에서 먹었던 맛과 좀 다르다고 했다.
[ 안 매워? ]
[ 응 ]
[ 맵게 해달라고 할 걸 그랬네 ]
[ 그것보다,,맛이 없진 않는데..뭔가 달라,,]
[ 재료가 달라서 그러겠지...]
[ 하긴, 같은 재료로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게 음식이니까...]
우린 더 이상 음식평가는 하지 않기로 하고
볶음밥을 주문해 포장을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깨달음은 블로그를 10년 넘게 하면서
좋았던 일들만 떠올려보자고 한다.
그러면 내 마음이 편해질 거라며..
여러분들이 걱정해주신 덕분에
깨달음은 이제 기운을 많이 차렸습니다.
걱정돼서 전화하신 친정엄마에게
자긴 괜찮다고 걱정 마시라고
오래 사셨기 때문에 서운 한 게 없다며
조의금을 많이 주셨으니 그 돈으로
맛있는 거 사 먹을 거라며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그리고 블로그는,,,
무언가 기록을 남긴다는 의미만으로도
존재의 이유가 충분하지 않냐는 깨달음
의견을 존중해 쉬엄쉬엄 하기로 했습니다.
늘 저희 부부를, 그리고 이 블로그를
응원해 주시는 숨은 독자님들, 또한
10년을 함께 해주신 많은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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