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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내 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by 일본의 케이 2018. 1. 30.


17년전, 일본어학원을 다닐 적, 알바비가 나오는

 날이면 룸메이트와 약속이나 한듯 손을 잡고  

규동집(소고기 덮밥)으로 향했다.

한그릇에 280엔(한화 약3천원)밖에 하지 않았지만

 요시노야에 가면 된장국(미소시루)를 따로 

주문해야했기에 된장국이 딸려 나오는 

마쯔야 골라가며 먹으면서도 행복했다.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과 목표와 꿈을 향해 

열심히 사는 내 모습이 대견해서 궁핍하고 

초췌한 시간들이 아프게 다가오지 않았다

이젠 규동에 된장국이며 샐러드, 김치까지 

뭐든지 주문해서 먹을만큼 경제적인 여유가 

생겼지만 오늘의 난 그때보다 더 초라하고

허해져가는 가슴으로 규동을 먹고 있다.


집에 돌아와 짐 정리를 했다.

마음이 심란해지면 습관처럼 짐을 정리한다.

아까워서 못 버렸던 것들, 버리기엔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던 것들을 꺼내 버리면서

 내 머릿속 잡념들도 함께 버리고 싶어서이다.

그렇게라도해야만이 내 마음 속에 요동치는 

욕심과 질투, 좌절과 비통함을 

비울 수 있을 듯했다.

먼저,유학시절 기숙사에서 샀던 

이불셋트를 버렸다.

내가 일본에서 첫날을 보냈던 이불과 베개.. 

기숙사를 떠나 혼자 살 때는 물론 결혼 전까지 

 나를 따뜻이 덮어 주던 이부자리였다

몇번을 버리려했지만 힘들었던 유학시절,

 꿈과 희망이 있었던 그 시간들이 고스란히 

묻어 있어 다시 넣어두고 넣어두었는데 

오늘은 그냥 꺼내 수거 스티커까지 붙혔다.

다음은 논문에 사용했던 조사 테이터들과

세미나 관련서적,협회 논문집들을 버렸다.

굳이 버리지 않아도 될 것이지만

책장이 너무 빡빡해서라는 구실을 삼아

일부러 골라서 묶었다.

[ 이거 왜 버려? 버리면 안 되잖아 ]

깨달음이 놀래서 얼른 노끈을 풀었다.

[ 그냥,,버려도 돼..]

[ 왜 그래? 왜 논문집을 버려? ]

[ 이젠 필요 없어...]

[ 도대체 뭔 일이야? 왜 그래? ]

[ 그냥,,버리게 해 줘...]


선배가 상을 탔다는 걸 진작 알고 있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 받는 귀한 상을 받았다.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작업실에서 나눴던

 얘기들도 잠깐 스쳤다. 나와는 전공이 달라 

연구영역이 달랐지만 우린 같은 한국 

유학생이라는 점과 전라도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얘기가 잘 통했다.

그 선배가 아주 큰 상을 받았는데 난

마음 깊숙이 기뻐하지 못하고 있었다.

 학회지에 선배를 소개하는 페이지가 길어질수록

 가슴이 턱 막혀오고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울었다. 지금의 내가 너무 초라해서..

 울었다. 더 열심히 못한 내가 바보스러워서,,

울었다. 힘들었던 그 시간들이 아까워서..

울었다. 이 상황을 벗어나지 못함이 어리석어서,

울었다. 울고 있는 내 자신이 한심해서...

그렇게 잠이 들었다가 다시 깼다.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푸쉬킨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말라고 했다.

우울한 날들을 견디며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고야 말리니..라고,,

그래서 노력을 한다고 했는데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실제로 50년이라는 시간을 살아보니 

삶은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였다.

그래도 노력을 더 해야했을까....

삶이 나를 속인게 아니라 내가 삶을

속이며 살아왔던 것 같다.

좀 더 편하고, 좀 더 쉽게, 좀 더 간편하게

좀 더 득이 되는 길을 택하며 살았기에

 삶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 것뿐이였다.

자업자득이다.


지금 내가 못 이룬 것에 대한 욕심을 부릴 게 아닌

가진 것에 감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너무 잘 안다.

더 많은 것을 추구하고, 더 많은 성장을 바라고

더 인정받고 남들보다 더 위에 서려고 하면

행복해 질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이렇게 잘 알면서도 주변 사람과 비교하며

절망에 빠져서 못 이룬 꿈만 떠올리고 있다.

아팠을 땐 건강이 최고라고 다른 건 다 필요없다며

지금에 만족하자, 지금에 감사하자,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되새김 했으면서 끝없이 누군가와의 

비교평가를 멈추지 않고 있었던 내가 있다.

불덩이처럼 뜨거운 욕심을 끌어안은 채

 남의 마음을 치유하고 어루만지며

상처가 아물 수 있도록 조언을 하고 있는 난

얼마나 위선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그 누구보다 본질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욕심을 움켜쥐고 괴로워하고 있다.

방법을 몰라서 못 내려놓은 게 아니라

놓기 싫은 것이다. 

 하루하루가 지옥같았고 고통스러웠던 

그 3년간의 시간만이라도 보상받고 싶은 마음,

그 역시 욕심인 것이였다.

참 못나고 미련스럽다..

삶이 나를 속인 게 아니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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