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저녁 하기 귀찮다는 내 말에
밖으로 나와 뭘 먹을까 두리번거리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주방에 서는 걸 지겨워하지 않는데
가끔은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다.
[ 요즘 많이 피곤한 것 같아 ]
[ 응,, 조금,, 잠을 못 자서..]
갱년기에 들어서면서 불면증이 생겼는데
약을 복용하고 많이 좋아져
깨지 않고 푹 잘 잤는데 웬일인지
일주일 전부터 다시 잠을 설치고 있다.
적당히 주문을 하고 음식을 기다리는데
깨달음이 여행사 얘길 꺼냈다.
[ 한국은 지금 완전 가을 날씨라던데? ]
[ 아니, 한국도 낮엔 덥대. 여기처럼 ]
[ 그럼, 우리 옷을 어떻게 입고 가지? ]
[ 그냥 재킷 입고 가면 될 것 같아 ]
한국행 티켓을 예약해 놓고 우린 행여나
이번에도 결항이 되지 않을까 내심
조마조마했는데 여행사 전화를 받고
안심하고 스케줄을 짜기 시작했다.
깨달음은 이번에 한국에서
신발을 하나 사고 싶다고 했다.
[ 사, 사줄게, 얼마든지 사 ]
[ 그리고 핸드폰 줄은 홍대에서 살 거야 ]
[ 그래,,, 근데 한국은 아직 일본처럼 핸드폰을
줄로 매고 다니지 않는 것 같던데..
그래서 없을지 몰라 ]
[ 아니야,, 분명 있을 거야 ]
[ 현대백화점이랑 아모레퍼시픽 갈 거야,
3년동안, 새로운 건물들이 많이 생겼을 것
같으니까 여기 저기 찾아가 볼 거야 ]
[ 그래 ]
[ 그리고 성수동 카페도 갈 생각이야 ]
[ 그래 ]
[ 근데,,당신은 한국에 가면 내가 말하는 거
뭐든지 다 들어주고 사고 싶어 하는 것도
다 사주잖아, 왜 그래? 여기서는 안 그러잖아 ]
[ 한국에서 당신은 외국인이잖아.
말도 못 하고, 익숙하지 않으니까 모든 걸
케어를 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그런 거야 ]
[ 비싼 것도 그냥 막 사주잖아 ]
[ 그냥,, 기분 좋아라고..]
여기서는 제지하는 것도 많고 못 사게
말리면서 한국에만 가면 완전 천사처럼
뭐든지 들어주는 게 신기하단다.
한국에 자주 가는 것도 아니고
체류기간도 늘 3. 4일뿐인데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깨달음이 원하는 것은
되도록이면 모두 들어주려고 했다.
그래 봤자 3박인데 사면 뭘 얼마나 사고
먹으면 얼마나 먹겠냐 싶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두는 편인데 깨달음은
한국에 갈 때마다 내 모습이 천사처럼
보였단다.
[ 근데. 깨달음, 이번에는 칼국수나 만두는
한 번씩만 먹자..]
[ 나, 문대통령이 갔던 삼청동 수제비도 먹고
명동 칼국수도 갈 건데..]
[ 아니..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뭘 먹어야 할지 모른다면서 왜 같은 걸
자주 먹으려 하냐는 거지..]
[ 그러긴 하는데.. 칼국수하고 수제비는
맛이 다르니까 꼭 먹어야 돼 ]
[............................... ]
이번에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거냐고 다시 묻는 깨달음.
[ 응,,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해 ]
[ 고마워..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
한국에만 가면 천사인데 일본에서도
그 모습을 좀 보여주면 안 돼?
일본에 입국하는 순간, 그 천사 모습이
사라져 버린단 말이야..]
[ 그렇게 달라? ]
[ 응,,한국에서는 당신이 꼭 엄마처럼
너무 잘 챙겨주고 다 해주잖아..]
[ 여기서도 챙겨주잖아,,]
[ 그러긴한데..여기서는 무서운 엄마라고나
할까..한국처럼 인자한 모습이 아니야]
[ ................................... ]
내가 뭘 얼마나 그렇게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지 정작 난 잘 모르겠지만 깨달음
눈에는 많이 다르게 느껴진 모양이다.
[ 깨달음, 여기서는 당신이 나한테 잘하잖아.
내가 외국인이니까. 그거랑 같은 거야 ]
[ 아,, 그런 거야..]
뭔가 이해가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앞으로 자기도 잘할 테니 한국에서
잘 부탁한다며 음식 리스트를 저장해 둔
메모장을 내밀었다.
간장게장, 북엇국, 육개장, 마약김밥,
다섯 가지 맛 치킨, 파불고기, 연포탕,
꽃게찜, 마카롱, 인절미 떡..,,
갈 때마다 먹었던 메뉴들로 가득 적혀있는 걸
보니 이번에도 깨달음은 새로운 도전을
하기보다는 원래부터 좋아하는 것들을
즐길 생각 같은데 옆에서 난 맛있게
먹는 방법만 알려주면 될 것 같다.
인자한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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