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공항에 도착해 택시를 타려는데
깨달음이 지하철을 타고 싶다고 했다.
3년의 공백이 있었으니 지하철을 타고
사람들도 구경? 하고 오랜만에 한국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다고 했다.
30분이 넘도록 5호선을 타고 오는 길에
오고 내리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던
깨달음이 한국사람들도 일본처럼
좌석 가장자리를 앉으려고 한다고
자리가 비면 다들 거기로 옮겨간다며
예전에는 못 봤던 풍경이란다.
[ 아니야, 10년 전에도 그랬어 ]
[ 그래? 난 왜 못 느꼈지...]
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고 깨달음은 바로
리모컨을 들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프로를 찾았다.
가족들과의 약속시간까지는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갈 수 있다고
했더니 된장찌개 먹으러 가자고 했다.
한국에 오면 제일 먼저 그 집 된장찌개를
먹어야겠다 생각했던 게 떠올랐다며
외투를 잽싸게 걸쳤다.
가게에 도착, 된장찌개를 두 개 시키려는데
순두부로 하나 바꾸라며 그래야
두 가지 맛을 동시에 볼 수 있단다.
[ 내 것을 또 먹는다는 거네..]
[ 먹는다기 보다는 맛본다는 거지 ]
[ 그니까 당신도 된장하면 되잖아 ]
[ 순두부도 먹고 싶어서 그래 ]
[ 알았어 ]
그렇게 깨달음은 밥은 안 먹고 순두부와
된장찌개를 번갈아 먹으며 변함없는 맛에
감탄을 했고 내 뚝배기에 들어있는
계란까지 건져 먹었다.
매번 한국에 오면 이런 식으로 내 것까지
다 먹는다는 걸 알기에 난 기꺼이
깨달음에게 다 내줬다.
식사를 마치고 시계를 보며 남은 3시간,
어딜 갈 건지 생각해뒀으니 일단 달달한
디저트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익선동 모 카페에 들어가 주문을 하고
수플레 팬케이크가 나오자 나에게
먼저 한 입 먹어 보란다.
[ 부드럽고 맛있네 ]
[ 코리아타운보다 더 맛있어? ]
[ 당연하지 ]
[ 아, 여기 한국이지.. ]
내 대답만 듣고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하고는
한 입 입에 넣더니 엄지 척을 하면서
자기 혼자 다 먹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 응, 다 먹어. 그 대신 조금 있다가
가족들이랑 식사할 때도 잘 먹어야 돼.
배불러서 못 먹겠다는 말 하면 안 돼 ]
[ 응, 저녁은 고기 먹잖아, 한우,
내가 한우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걱정 마 ]
가족들은 저녁 메뉴를 온전히 깨달음이 먹고
싶은 것으로 선택하게 했고, 깨달음은
망설임 없이 한우라고 답했다.
카페오레를 다 마시고 우린 용산으로
이동을 해 깨달음이 보고 싶다던
아모레퍼스픽 건물로 갔다.
돈이 상당히 많이 들어간 건물이라며 지하부터
꼼꼼히 살피고 사진을 찍는 깨달음 뒤를
난 말없이 따라 움직였다.
잠깐 휴식 공간에 앉아 있다가도 다시 벌떡
일어나 열심히 사진을 찍는 깨달음에게서
건축가 냄새가 물씬 풍겼다.
실컷 사진을 찍고 용산역도 어슬렁어슬렁
둘러보고 우린 다시 호텔로 돌아와
가족들에게 건넬 선물을 챙겨
약속 장소로 향했다.
드디어 가족들과 만난 깨달음은
한 명씩 허그로 인사를 하며
[ 오랜만이에요]라고 말했고
가족들은 부모님 두 분 여의고 마음이
얼마나 허전하겠냐고 위로의 말을 전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형부와 제부가
깨달음에게 술을 권했고 깨달음은
물 만난 고기처럼 술을 잘도 받아 마셨다.
한우 등심과, 육회, 그리고 뼈 갈비까지
식사용으로 나온 간장게장에
갈비탕을 먹고 또 먹고 마시고
또 마시는데 깨달음이 소주를 너무
잘 마셔서 가족들이 놀랬다.
[ 당신, 소주 잘 마신다고 다들 놀라네 ]
[ 안주가 좋으니까 술이 잘 넘어가 ]
[ 근데, 깨달음, 당신 한 병 넘게
마신 거 알아? ]
[ 그래? 전혀 안 취한데. 더 마실 수 있어]
[ 그래, 그럼 더 마셔 ]
식사를 마치고 언니네로 이동해서
또 남자들은 소주를 마시다가 시간이
갈수록 눈이 게슴츠레 반쯤 감겨가는
깨달음을 보고 다들 해산을 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종로 3가
포장마차 거리를 보고는 눈이 번쩍
뜨였는지 한 잔 더 하고 싶다고
해롱거리며 고집부리는
깨달음을 붙잡고 호텔 방에 눕혔더니
바로 떡실신 상태로 잠이 들었다.
샤워를 하고 나와보니 코를 드르렁 거리며
꿀잠을 자고 있는 깨달음..
자기를 위해 어머님도 서울로 올라오시고
조카들도 멀리서 와줬다며 자기는
너무 행복한 사람이고 이렇게 사랑을
받아도 되는지 미안하고 고맙다며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다.
3년 만에 한국에 와서 따뜻한 위로를 해 준
가족들 사이에 기분 좋게 먹고
마실 수 있어 너무 행복했다며
택시 안에서 혀가 꼬인 상태인데도
계속해서 자기를 기다려 준
가족들과 한국에 고맙다고 했다.
내일 일어나면 또 얼마나 흥분을 하며
한국을 즐길까 싶어 난 조심히
깨달음 이불을 목까지 덮어줬다.
감기 걸리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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