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 10년,, 집안에 별거를 시작한 지
5년째인 다빈 씨(가명)는
오늘도 울지 않고 씩씩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본 건 다음 블로그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내 유학시절을
보냈던 곳에 살고 있다는 걸 알고
반가운 마음에 만나자고 먼저 연락을 했었다.
그러고 나서 다빈 씨 부부와 우리 부부는
같이 식사를 세 번 했었다.
그런 사이였는데 내가 이쪽으로
이사를 오면서 만나지 못한 채로
7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작년부터 연락을 하고 올해 들어
다시 얼굴을 보게 되었다.
오늘은 내가 다빈 씨 회사 근처로 가서
점시시간에 맞춰 같이 식사를 했다.
[ 언니,, 오늘도 아침에 또 그런 거 있죠?,
애들에게 식사 예절을 제대로 시키라고
일본에서는 그릇을 들고 먹는다는 걸
알면서도 왜 안 가르치냐고 온갖 짜증을
내는데.. 그래 넌 짖어라 하고
나는 아무 대꾸도 안 했어요,,
원래 잘 들고 먹는데 오늘 잠깐 안 들고
한 숟가락 떠먹으려던 찰나에...
그걸 가지고 지랄을 해서..]
일본인 남편과 결혼생활 10년째인
다빈 씨는 두 딸을 두었다. 연년생인
두 딸은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난 아직까지 직접 만나보지 못했지만
카톡 사진을 통해 두 딸의 임신과
출산의 시간들을 지켜봤었다.
[ 언니,, 지난달에는 애들 앞에서
한국여자라면 지긋지긋하다면서
또 그래서 나도 막 퍼부어줬어요,
나나 되니까 너랑 같이 산다고
고맙게 생각하라고 일본인 여자랑
결혼하면 니가 잘 살 것 같냐고
착각 말라고,, 그랬더니 아무 말도
못하더라고요 ]
둘은 5년 전부터 날마다 이렇게 서로를
뜯고 물고, 상처 주며 살아가고 있단다.
계기가 됐던 건 특별히 없는데 아이를
낳고 아이 양육에 관한 트러블이 잦아지면서
거친 말의 수위가 높아지고 점점 안 맞는 게
많아져서 이혼을 하려고 했는데
아이들 때문에 서로 참고 사는 거란다.
디저트가 나오자 그녀는 이렇게 맛있는
푸딩은 처음이라며 너무 맛있게 먹었다.
[ 내 것도 먹을래? ]
[ 아니에요, 나 다이어트해야 돼요 ]
[ 다빈 씨.. 지난번에도 물었던 것 같은데
지금 뭐가 가장 큰 문제야? 남편과 사이에 ]
[ 음,,,,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냥 서로가
서로에게 말로 상처 주고 아프게 했던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큰 장벽 같은 게 세워져서
한 두 번, 다시 어떻게 잘 살아보려고
대화를 시도했는데 안 되더라고요 ]
서로에게 서운했던 것, 화났던 것들만
가슴속에 쟁여놓아서인지 좋게 대화를
시작하려고 해도 전혀 이어갈 수 없었단다.
[ 그래도 언니,, 나는 일본인이 어쩌고
그런 말은 안 했어,, 근데 걔는 말끝마다
한국 사람이 어쩌고 저쩌고
한국 사람이어서 이러네 저러네 하면서
꼭 나라를 얘기하는 거야, 정말 비겁해..
치졸하고, 쪼잔하긴 또 얼마나 쪼잔한지..
정말 인간으로서 못 된 구석이
저렇게도 많았나,, 그런데 나는 왜
저런 인간을 사랑해서 결혼했나 싶어요]
집안 내 별거이다 보니 정말 필요한 말만
하고 있으며 경제적인 것도 10원짜리 하나도
둘로 나눠 생활하고 있는 다빈 씨.
커피를 마시러 나온 우리 좀 걸었다.
자연스럽게 주변 공원 쪽으로 걸으며
하늘을 좀 올려다보기도 했다.
난 지난 6월에 다빈 씨를 만나고 지금까지
내내 가슴에 돌덩이 올려놓은 것처럼
답답하다가도 불쑥불쑥 화가 나곤 했다고
내 마음을 털어놨다.
[ 다빈 씨가 그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참고 살고 있다는 게,, 말로 받는 상처는
쉽게 낫질 않는다는 걸 너무 잘 알아서,,
그것도 가장 가까운 배우자인 남편한테 그런
모질고, 굴욕적인 언어들을 듣고 그것을
흘려버리며 참고 있다는 게
너무 가슴이 아팠어]
아물지 못한 상처에서 새어 나오는
핏자국을 아무 말 없이, 닦아내고 있는 것
같아서 보고 있으면 코등이 시큰해 왔다.
[ 다빈 씨.. 그 고통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서 난 다빈 씨가 걱정된다.
병 생길까 봐,, 나처럼....]
[ 아무리 그래도 깨달음님은 저희 남편과는
결이 다르시죠,, 우리 남편처럼
막말하고 그러진 않잖아요,,]
[ 그러긴 하는데,, 깨달음도 필터 없이
뱉어내는 말들이 너무 많아서
우리도 늘 싸웠지.....]
위로도 다독임도 다빈 씨에게는 필요치 않았다.
결혼생활 10년 동안 다빈 씨에게
남은 건 설움과 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국제커플들에게 자주 생기는 문제점 중에
하나는 상대의 나라에 대한 비난이다.
특히 한일커플들은 한일 양국의 묘한
감정싸움이 뒤섞이면 걷잡을 수 없고
풀기 힘든 수렁으로 빠져 버린다.
은연중에 하는 말속에 내 나라를 내 민족을
하대하는 듯한 뉘앙스가 담겨 있으면
발끈하게 되고 불쾌한 여운이 오래간다.
두 나라의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니
문제가 발생하는 건 당연하지만
한일관계에 묵은 이야기들은 결혼해
살다 보면 다루고 싶지 않아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가끔 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역사, 식민지, 독도, 위안부 등등
서로에게 민감한 부분임을 알기에
일부러 건들지 않으려 애를 쓰며
사는 한일부부들도 많다.
나는 다빈 씨에게 한국인의 가슴 저편에
쪽발이가 있듯이, 일본인들에게도 가슴
한구석에 조센징이 있는 거라고 했더니
오늘의 명언이라며 배를 잡고 웃었다.
[ 다빈 씨.. 나는 다빈 씨가 힘들면 그냥
울었으면 좋겠어.. 언제든지 울고 싶으면
목 놓아 울었으면 좋겠어..
그래야 속앓이를 안 해...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야 돼. 다빈 씨]
[ 알았어, 언니.., 울게요.. 히히 ]
그래도 천만다행인 게 아이들에게는
아주 잘한다는 다빈 씨 남편,,
그래서 얘들이 고등학교 들어갈 때까지는
참을 거라며 남편이 경제력이
있어서 혼자 키우는 것보다
훨씬 낫다며 또 밝게 웃는다.
커피를 다 마시고 다시 회사에 들어가야 하는
다빈 씨에게 난 편지 한 통을 건넸다.
그녀가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는지
다 밝힐 수 없지만 그녀가 받고 있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조금이나마 완화되고
숨통이 트였으면 하는 마음을 전달했다.
비단, 한일 커플뿐만 아니라
배우자가 외국인이어서 발생되는
국제커플들에 크고 작은 트러블들은
결코 쉽게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부부가 다투다 보면 서로를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도 아물지 않을 상처들을 만든다.
다빈 씨 가슴에 미움과 저주로 뭉쳐진
응어리들을 어떻게 녹여내야 할지
생각을 거듭해 보지만
좀처럼 명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한일 커플이어서 문제가 많은 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한일 커플이기에
늘 잠재된 트러블이 존재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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