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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해외생활하며 부모님께 효도한다는 것

by 일본의 케이 2014.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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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은 다음주 일요일이 어머니 날(매해 5월 둘째 일요일)이다.

뭔가를 보내드리기 위해 간단하게 쇼핑을 했다. 

늘 입버릇처럼 옷이며 뭐며 아무것도 필요없다 하시니 우린 음식을 위주로 선택한다.

평소 좋아하셨던 것, 자주 드시는 것들을 위주로 보내드릴려고 애를 쓴다.

 

서랍속에 넣어 둔 지난번 전표를 챙겼다.

예전 전포와 함께 가져가면 50엔이 디스카운트 되기 때문이다. 

 

휴일에도 정상영업을 하고 있는 신주쿠 중앙 우체국에 도착했더니

사람들이 저마다 서로 다른 사연들을 담아 줄을 서 있었다.

소포를 보내고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받지 않아서

아버님 핸드폰으로 걸었더니 통화가 된다.

생선 보냈으니 맛있게 드시고 저희가 더워지기 전에 또 한 번 놀러 가겠다고 그랬더니

우리 아버님, 늘 하시는 말투로 저승사자한테  [케이] 얼굴 10 보고 갈 테니까

기다리지 말라고 그랬으니까 서둘러 올 필요 없다고 또 농담을 하신다.

90세가 되신 우리 아버님,,,시댁에 갈 때마다 [케이] 얼굴 봤으니

 인자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매번 그러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진다.

옷깃을 여미고 잠시 걷다가 친정엄마에게도 전화를 드렸다.

어버이날인데,,, 못 찾아 뵙는다고 그랬더니 외국에서 사는 사람이 어떻게 어버이날까지 챙기냐고

한국에 있는 다른 형제들이 대신 잘 하고 있으니까 잊으라신다.

 

난 실은 효도가 뭔지 잘 모른다.

속 좀 차리고 자식노릇 해보려고 했을 땐, 부모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걸 체험한 후론

그저, 살아 계실 동안 얼굴 보여드리고, 좋아하시는 음식이나 맘껏 사드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효도가 아닌가 싶었다.

돌아가신 후에 후회하고 싶지 않고, 가슴 찢어지는 아픔을 더 이상 경험하고 싶지 않다는

 내 이기심에서 효도라는 이름에 것들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부모님이 앞으로 20년을 더 사신다 해도, 1년에 1번씩,,, 20번 밖에 부모님 얼굴 볼 시간이 없다.

그것도 20년을 사신다는 보장도 없으니... 참 허망한 숫자다...

10번이 될 수도,, 5번이 될 수도 있으니..

그래도 자주 갈 수가 없으니 되도록이면 전화로 목소리라도 들려드리고

맛있는 거라도 드셨으면 하는 마음에 시댁에도 친정에도 소포를 자주 보내는 편이다.

특히 이렇게 해외에 살면 실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효도는 못해드리니

마음만으로 부모님을 그릴 수 밖에 없어 안타까운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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