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한옥마을에서 광주로 돌아오는 길
우린 병원에 들렀다.
큰 언니 시어머님이 계시는 암요양병원이였다.
병원에 들리기 전에 먼저 시어머니 아파트에서
필요한 속옷들을 챙겨 병원에 향하던 길
엄마가 차 안에서 서럽게 우셨다.
“ 아무도 없는 썰렁한 아파트에 들어간께
기분이 요상하고,,
꼭,,내 모습을 본 것같아서 너무 슬프더라,,
늙어서 병들어 이제 죽을 일만 남았다고
생각헌께 징하게 서럽고, 니기 시어머니 마음을
생각해본께 얼마나 억울하고 기가 막히실까
말도 다 못할 것인디...,,,”
한 번 터진 엄마의 슬픔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앞자리에 있던 깨달음이 걱정스런 눈으로
엄마와 함께 울고 있는 큰 언니를 번갈아 쳐다봤다.
병원에 도착했더니 마침 저녁식사시간이여서
우리는 그냥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엄마와 언니가 병실로 들어갔다.
그렇게 30분쯤 지났을 무렵,
엄마와 큰 언니는 또 눈물을 훔치며
병실을 나왔고 우리는 차에 타고서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엄마가 한마디 하셨다.
“ 늙으믄 죽는 것이 당연한 것인디,막상 사람들이
병들어 죽어가는 걸 보믄 속이 상허다..
곧 나한테도 닥칠 일이여서 남의 일 같지 않고
그래서 더 서운하고 서럽고 그런다...
혼자 병원에서 저러고 있는 모습도 짠하고,,
자식들도 다 필요없고,,,,”
듣고 있던 큰 언니가 말을 이어갔다.
“ 우리 시어머니, 혼자 사실 때는
곧 돌아가실 것 만 같았는데
병원에 들어가시니까 저렇게 정정하게
다시 살아나셔서 참 다행이야.
아프지만 않으셔도 더 오래 사실 건데..
엄마 말대로 자식들 다 필요없어..
그니까 엄마도 아프지 않게 몸 관리 잘하셔..”
우리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깨달음이
내 귀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 밥 먹고 우리 가라오케 가자, 오머니 기분이
안 좋으니까 기분도 풀어드리게.. ”
“ 엄마, 깨서방이 노래방 가자네,
엄마 기분도 꿀꿀하니까 가서
노래도 부르고 스트레스도 풀어버리시라고..”
그렇게해서 우린 엄마와 함께 6년만에
같이 노래방에 갔다.
깨달음은 자기가 알고 있는 한국노래,
특히 옛날 노래들을 총 동원해서 부르기 시작했다.
깨서방의 [ 돌아와요 부산항에 ]를
듣고는 엄마와 언니는 눈물바람을 했다.
“ 어째..깨서방이 부르는 노래는 슬프다냐,,
이상하게 구슬프게 들려.,목소리가,,,.”
나는 한 번도 그렇게 못 느꼈던 깨달음의 목소리가
가족들에겐 구슬프게 들렸던 것 같았다.
엄마가 좋아하는 트롯트를 열심히 찾아
엄마는 노래를 하고, 큰 언니는 탬버린을 흔들고
나는 오랜만에 재롱을 떨고 있는데
깨달음이 춤 추는 내 모습이 웃겼는지
사진을 연속해서 찍었다.
그렇게 마지막 밤을 보내고 일본으로
돌아오던 날 저녁 엄마가 전화를 주셨다.
“잘 도착했냐? 피곤하것다. 깨서방은?”
“응 엄마, 지금 샤워 중이야.
우리보다 엄마가 이것저것 해주시느라
고생이 많았지 뭐. 깨서방 좋아하는 것
챙기느라 엄마가 신경 많이 쓰셨잖아…….”
“아니여, 내가 그런 것 말고 해줄 게 없응께
당연히 하는 것이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여.
깨서방이 잘 먹어준께 내가 더 고맙드라.”
“엄마, 이제 좀 쉬세요.
다음에 또 시간 내서 갈게요.”
“응, 알았다. 근디, 옆에 깨서방 없지?
샤워한다고 그랬지?”
“응, 왜?”
“너는 뭔 돈을 그렇게 많이 넣냐?
내 책상 서랍에 있드만. 돈 필요 없다고
그래도 너는 어째 그렇게 돈을 넣냐?
내 마음이 많이 불편해야.
깨서방은 모르는 돈이지?”
“아니야, 엄마. 깨서방이 엄마 드리라고 한 거야.
우리가 한국에 자주 못 가니까 용돈이라도
많이 드리자고 얘기하고 드린 거야.
깨서방도 아는 돈이니까 걱정 마세요.”
“아니, 근디 난 참 맘이 불편허다.
너한테도 그렇고 깨서방한테도 밥 해준 거밖에
없는디 이렇게 큰 돈을 받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 그냥 사위가 주는 용돈이라 생각해.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시고 그래.
다른 형부들한테 받는 것처럼
그냥 편하게 받으시면 돼.”
우린 한국에 한 번씩 갈 때마다
엄마에게 용돈을 듬뿍 드리는 편이다.
다른 이유 없이 그냥 가깝게 있지 못해
죄송한 마음으로 드린다.
더 솔직히 말하면 해 드릴 수 있는게
돈 드리는 것 밖에 없어서이다.
홀로 계신 엄마를 두고 떠나 오는
내 발걸음을 더 가볍게 하기 위함이다.
조금이나마 내 마음의 죄송함을 덜고 싶어
돈으로 해결하고 있다는 게
더 정확한 내 속내이다.
함께 식사하고, 말벗이 되어 드리고
같이 산보도 다니며 맛있는 음식도
사드리고 어깨도 주물러 드리고 그래야하는데...
혼자 계신 엄마에게 필요한 건 돈이 아님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 그래도
돈이라도 드릴 수 있는 이 상황이 다행이라며
알량한 위로를 하고 있는 내 자신이 있다.
차 안에서 서럽게 우시던 엄마모습이
오늘도 날 붙잡고 있어 쉬 잠이 오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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