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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한국 시장에서 남편이 보았던 것

by 일본의 케이 2016.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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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엄마와 함께 다녀왔던 여수에서

사 온 쥐포가 두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그 동안 냉동실에 넣어두고 아끼고 아껴 먹었던 

깨달음이 오늘은 마지막으로 남은

쥐포를 구워달라고 했다.

예정대로라면 한국에 가서 또 몽땅 

사 올 생각이였는데 그러질 못하니그냥 포기하고

먹기로 한 듯 했다.

[ 맛있지? ]

[ 응, 역시, 한국산 아니면 안 돼! 좀 비싸도

맛이 이렇게 다르잖아, 진짜 맛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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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한국에 갈 때마다 재래시장에 들른다.

사야할 물건이 있어서도 하지만

나도 그렇고 깨달음 역시 시장가는 걸 좋아한다.

시장에 할머니들이 나물들을 바구니에

올려놓고 열심히 다듬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찡해 온다고 한다. 

시금치도 깨끗이 정리해서 가지런히 놓고

완두콩도 까서 예쁘게 한 그릇 올려 놓고

머리에 수건을 둘러 쓴 모습으로

검게 군살이 박힌 양손에는 칼끝이 나간 

작은 문구용 칼로 껍질을 벗기기도 하고,,,

점심시간 때는 서로가 가져온 도시락을

마주 펼쳐놓고 식사를 하시는 모습...

깨달음은 그런 모습들을 보며 

한국을 지탱한 어머니의 힘이 아니냐고 했었다.

일본사람에 비하면 조금은 대충 넘어가려고 

한다는 한국인의 이미지가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치밀하고 섬세하며

성실함을 엿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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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놈 좀 사갔고 가쇼!! 인자 집에 갈랑께..]

[ 시골에서 올라오셨어요? ..]

[ 응,,정읍에서 왔는디..인자 집에 갈라고,,

긍께 이 놈 좀 사가쇼, 내가 다 떨이로 줘 불랑게

3천원만 주고 다 가져가쇼, 집에 가야 된께... ]

수북히 올려놓은 부추 한 바구니를 

검은 봉투에 넣고 나머지 부추들도 

손으로 쓸어담아 주섬주섬 또 봉투에 밀어 넣으신다.

해질무렵이면 할머니들은 집으로 돌아가실

준비를 하느라 짐을 싸는 손놀림이 바빠지면서 

오가는 손님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깨달음이 항상 들리는 문어가게에 갔을 때

주인 아저씨는 나와 엄마는 기억하지 못하고

일본에서 왔다는 깨달음만 기억하셨다.

[ 저희들은 기억 안 나세요? ]

[ 응, 아줌마 손님들이 많아서 

아줌마들은 기억을 다 못해..

근디 이 아저씨는 일본에서 왔다고 그래서

 내가 기억해 뒀제, 얼굴이 일본사람 같이 생겼잖아요 ]

옆에서 듣고 있던 깨달음도

자기 얘기인줄 알고 대충 알아듣고 웃었다.

사람냄새 나고 넉넉한 인심도 느껴지고

어릴적 기억이 새록새록 나서도 좋다는 시장 투어.

고령인데도 불구하고

할머니들이 빨간 립스틱도 바르고

머리에 곱게 비녀를 찌르고 장사하는 모습을 보면

진정한 프로다운 모습이 아닌가 싶단다.

내 고등학교 동창 중에 부모님의 이혼으로

할머니 손에 키워진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주말이면 할머니가 장사하시는시장에 가서

도와드리곤 했다.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날나리들과 휩싸여 다니며 꽤 많은 반황을 했었고 

그럴 때마다 할머니가 장사도 마다하고

손녀를 찾으로 학교로 오시고

선생님께 머리를 조이는 모습을 자주 보이셨다.

그런 질풍노도의 시간을 보낸 

친구가 마음을 잡았던 건 할머니가

주신 돈 때문이였다고 했다.

 

 [ 어느날, 할머니가 검은 비닐 봉투에 넣어 

돈을 주시더라, 사고 싶은 메이커 신발을 사라고,,,

그래서 좋다고 얼른 돈을 받았는데

얼마나 할머니가 꽉 쥐고 계셨는지 잘 펴지지도 않고 

지폐가 뜨듯하더라.꼬깃꼬깃 구겨인 천원짜리가 37장,

백원짜리 동전이 2만원정도 들어 있었어..

근데 동전을 세면서도 짜증이 났지만 

구겨진 천원짜리 지폐가 계속해서 미지근한거야...

할머니가 이 돈을 모으려면

나물거리를 얼마나 팔아야 하는지 내가 더

잘 알아서인지 그냥 화가 났어,,, ]

내가 고등학생이였던 80년대 후반, 

나이키, 아식스, 프로스펙스 운동화와 

뱅뱅 청바지가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이였다.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메이커를 신고, 입고

다니면서 폼을 잡았던 시절,,

지지리도 가난했던 나와 그녀는 그런 친구들이

솔직히 많이 부러웠었다.

깨달음은 시장의 할머니를 보며 

한국인의 저력과 어머니들의 정성을 보았고 난

고교동창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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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 땀 흘리는 모습도 멋있지만

저렇게 연세를 드셨어도 삶에 충실하시는 할머니들,,

그 가슴 깊은 곳엔 자식을 위해, 그리고 손주들을 위해

차가운 길바닥에서의 시간을 감내하실 것이다.

요즘은 재래시장도 예전같지 않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사람과 사람사이의 거리를 가깝게 

만들어 주는 곳이야말로

바로 한국의 재래시장이 아닌가 싶다.

옆에서 깨달음은 다 먹은 쥐포 접시를

아쉬운 듯 매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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