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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신랑(깨달음)

35년전 일본의 우편물에 담긴 사연

by 일본의 케이 2015. 6. 4.

이른 저녁을 먹고 우린 서로 각자 방에 들어가 짐 정리를 했다.

난 내 방에서 옷들을 정리하고 깨달음은

자기 방에서 책상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거실에 틀어 놓은 오디오 볼륨을 약간 높여 놓고

각 자 방문을 열어 놓은채로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짐들을 정리했다. 

그렇게 한시간을 보냈던가,,,

CD를 바꾸고 싶어 거실로 나가면서 깨달음 방을

힐끔 쳐다봤더니 뭔가를 열중해서 읽고 있었다.

궁금해서 방에 들어갔더니 코를 훌쩍 거렸다.

[ ................... ]


 

손에 들린 편지를 읽고 있는 듯해서

울었냐고? 물었더니 아무 대답이 없었다.

장학금 학회에서 장학생으로 선발 되었다는

엽서도 있고,,, 그 당시 부잣집 아들이였던 친구가

미국여행 중에 보낸 엽서들도 있고,,,

남동생이 보낸 편지들, 고향의 여자 동창생이 보낸 편지,,

그리고 아버님, 어머님이

보내 주신 편지와 전보,, 그런 것들을 읽어 보고 있었더니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단다.

 

하나씩 나도 훑어 보다가 내 눈에 들어온 건 전보였다.

 아버님이 보내신 전보.

전보라는 걸 처음 봐서인지 생소하기도 하고

드라마에서나 봐 왔던 것이기에 신기하기도 했다.

그 당시 급하게 전달할 사항이 있으면 항상 전보를 치셨단다.

옛날에는 참 불편했겠다고 요즘은 핸드폰이 있어

바로 연락하니까 편하다고 했더니 요즘에도

전보를 친다면서 한국은 전보 없냐고 물었다.

[ ..................... ]

옛날에는 40년? 50년 전에는 [전보]라는 게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고, [축전]이라는 것은

남아 있는 것 같다고 얼버무렸다.  

 일본에서는 결혼식이나 생일, 입학, 졸업 등에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장례식이나 세미나 등에 참석을

못할 경우는 죄송하다는 내용을 담아 보내기도 한단다. 

그냥 전화하면 되지 꼭 [전보]로 전해야 하는 게

좀 귀찮은 것 같다고 그랬더니

축하든, 사과든 서면으로 보내는 게

의미가 있어 일부러 [전보]를 보내기도 하고

더불어 꽃이나 인형들도 함께 보낸단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일]에 바로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다는

점이 아주 큰 매력이란다.

(일본 야후에서 퍼 온 이미지)

 

깨달음 편지 속에 첫번째로 발견한 전보에는

 [ 코타츠(전기난방 테이블) 사지마, 보낸다

[コタツ買うな、送る] 라고 적혀 있었다.

겨울에 사용하기 위해 코타츠를 사겠다고

용돈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이렇게 전보를 받고

아버님이 보내 주실 때까지 기다렸단다.

한글자 한글자마다 돈이 드니까 최대한 짧게 

 보내시느라 간단명료한 단어선택의 센스가 있어야했단다. 

 

다음 전보는 [ 조부 사망, 돌아와, 아빠 ]라고 적혀 있다.

( 祖父、死す、帰れ、父)

대학 3년, 학기가 막 시작되던 달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단다.

학교에서 수업중인데 방송에서 자기 이름을 부르길래

부랴부랴 학회실에 가서 전보를 받았고

열어 봤더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내용이였단다.

그 길로 바로 시골에 내려갔다고,,그래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단다.

나하고는 살아온 세대가 달라서인지

이 누렇게 바랜 전보지를 보며 잠시 그 상황을 상상해 보았다.

깨달음을 눈물 나게 했던 건 남동생에게 온 편지였다.

형에게 잘 있냐고, 자긴 이번 시험 점수가

 별로 좋게 나오지 않았다는 내용과

 물리 62점, 영어 76점, 역학 60점, 수학 90점,,,,

 받은 점수도 적혀 있었다.

깨달음이 대학에 합격하고 동경에서 혼자 자취생활을 했고

3살차이나는 동생은 고등학생 이였기에

 주로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고민거리를

편지로 많이 얘기하곤 했단다.

특히, 형처럼 자기도 건축학과를 갈까 말까하는

갈등과 불안이 고스란히 적혀있었다. 

남동생이 보낸 편지를 읽어 보고 있으니

자기가 생각한 것보다 동생이 훨씬 자길 의지하고 좋아했다는 게

느껴졌다면서 지난달 시댁에서 동생 만났을 때

밥값 받은 게 좀 미안한 마음도 들고

이제까지 솔직히 연락도 자주 하지 않았는데

이젠 자주 연락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깨달음은 옛 편지들을 꺼내보며 타임머신을 탄 듯,

그 당시 가족애, 형제애, 우정을 새삼 느꼈고

[전보]에 담긴 사연들로 깨달음 가정사를

조금 엿볼 수 있어 좋았다. 

35년전, 어느 드라마의 한 장면을 연상케하는 

빛바랜 [전보]에 삶이 묻어 있어 눈이 자꾸만 간다. 

 

*공감을 눌러 주시는 것은 글쓴이에 대한 작은 배려이며

좀 더 좋은 글 쓰라는 격려입니다, 감사합니다. 

댓글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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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맛돌이 2015.06.04 08:32

    전보
    아득한 옛 일이 되었군요.
    답글

  • 콜럼비아 2015.06.04 09:22

    전보 오랫만에 보는것 같네요 저도 어릴때 가끔 전보오는것 보곤했는데 우체부아저씨가 일반편지는 문틈에 끼워놓고가는반면 전보는 항상 이렇케 크게 외치셨죠!! 전보요~~~^^ ㅎㅎ
    답글

  • 지후아빠 2015.06.04 09:49

    내용을 읽는 제 얼굴에도 미소가 퍼집니다. 잘 보았습니다. ^^
    답글

  • 빵건이 2015.06.04 09:50

    보관 했던 편지나 일기장 등등 읽어 보면 기억 나는 것도 있고 하여 추억에 잠기거나 마음을 추스리는 계기가 되더 군요 공감 합니다... 정말로...
    답글

  • 쏘댕 2015.06.04 10:08

    짧은 전보에도 왠지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져서 이 글을 보는 저도 눈물이 왈칵 하네요 ㅠㅠ
    답글

  • 흐음 2015.06.04 12:23

    저도 일본 와서 처음 대학 입학했을 때 주변 분에게 인형과 함께 전보를 받았었어요. 한국에선 보기 힘든거라 색다르단 생각이었는데..

    깨달음님 전보를 보니 한 가족의 가족사가 느껴져요. 저도 가끔 유학 생활 중에 주고 받은 편지들을 읽어보는데.. 그 인연들이 다 어디로 갔나 싶어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답글

  • 사는 게 뭔지 2015.06.04 12:29

    저희 아버지도 살아계실 때 동경으로 전보 치셨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전 개인적으로 사진보다 글이 더 추억을 기억하기에 더 좋은 거 같아요. 사진은 그 한 장으로 시작과 끝나지만, 글은 그 한 마디 한 마디에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나서요. 참 세월이 많이 흘렀네요. 아버지 전보 보내시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케이님 항상 건강하시고 어짜면 이렇게 감성 살려주시는데 한 도움 주시는지 ㅎㅎ 늘 감사합니다.
    답글

  • 울릉갈매기 2015.06.04 13:28

    저걸 아직까지 간직하시다니
    정말 대단하네요~^^
    행복한 시간 되세요~^^
    답글

  • 2015.06.04 14:06

    비밀댓글입니다
    답글

  • 2015.06.04 14:06

    비밀댓글입니다
    답글

    • 우편번호가 110-0003이면
      東京都 台東区 根岸 ( TOKYOTO TAITOKU NEGISI) 입니다.
      여기까지는 알 수 있지만 그 뒤 번지는 알 수 없습니다.
      도움이 되질 못해 죄송해요



  • 밥풀떼기 2015.06.04 15:33

    너무 너무 감사해요. 거기 뒤로는 숫자라서 거기까지만 알아내면 됩니다. ^^
    인천에서 네시까지 팩스 넣어라해서 조마조마했는데...너무 감사합니다.
    사무실에서 늘 눈팅하지만, 로그인해서 글 달기는 처음이네요.
    한국에서 보낸 어머님 우편물에서 EMS 표지를 보면 왜 그리 반가운지..
    건강하시고 두 분 행복하시길 항상 기도 드립니다. ^^
    참!!! 이사 축하드려요~ ^^


    답글

  • olivetree 2015.06.04 16:23

    케이님의 글은 과거를 추억하면서도 오늘을 살아가게하는 "씩씩한 애상"(음...표현이 이상한^^;)이 있어서 참 좋은~ 복잡한 시기 속에서 슬며시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글에 늘 감사하네요~
    답글

  • 2015.06.04 16:39

    비밀댓글입니다
    답글

  • 예전 편지들도 다 간직하고 계시다니 대단하고, 괜히 좀 부럽기도 해요. 저는 예전에 모아뒀던 친구들과의 편지들 같은 건 언제인지 몰라도 다 버려졌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저희애것은 가능하면 버리지 않고 보관하려고 하고 있는데, 집이 작아 이것도 어렵네요.ㅎ
    답글

  • dudcjs0620 2015.06.05 09:48

    휴대폰이 고장난 사이 고치는 동안
    이사를 하셨네요~
    각자방에서 문을 열어놓고

    짐정리를 하면서 옛기억을
    회상한다는 것 뭔가 로맨틱하단
    생각 했네요~


    전보…
    생소한 단어지만 뭔가 그리움이란
    단어가 떠올라 마음이 촉촉해집니다。

    답글

  • 김동일 2015.06.05 10:40

    아름다운 소중한 추억입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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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하하하 2015.06.06 01:36

    우리나라도 전화기 귀한시절엔 축하,부고로 전보많이 썻죠.. 가장빠른통신수단이었으니~ 세월참..빨리도 변하네요~ 당일로 일본도 갔다올수있는 시대이니~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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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릭맘 2015.06.06 13:02

    영화한편 본것같아요.여운이 많이 남습니다...케이님 말씀대로 전보는 아직까지 있는줄 모르겠으나 제가 2000년에 결혼할때 결혼축전은 받아봤네요^^
    답글

  • 2015.06.06 18:59

    비밀댓글입니다
    답글

  • 허영선 2015.06.09 11:01

    전보.. 오랫만에 듣는 단어에요..
    정말.. 요즘은 카톡이나 메일로 거의 끝나는데.. 전화를 통해 목소리로 소식을 전하는 것도 참 신경쓰는 듯 생색을 내곤하죠.
    자꾸 예전것들이 아련하면서 그리운건 나이가 들었다는 뜻인가요?
    참... 좋았던 시절들....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