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를 열 때마다 한국 냄새가 풀풀 난다.
이번에 한국에서 가져온
온갖 김치들이 밥상에 오르면
깨달음과 난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밥 한공기를 뚝딱 비우고 만다.
시간이 없어 바쁜 와중에 내 귀국 일정에 맞춰
엄마와 네 딸이 모여 씻고 저리고 갈고
버무리는데 두어 시간 만에 뚝딱 끝냈다.
내가 좋아하는 김치류만 선별해서
파김치, 열무김치. 무청김치, 부추김치,
얼갈이김치를 담았다.
20년 전, 유학시절 때는 김치 살 돈을
절약하느라 단무지를 사 먹기도 하고
배추보다 싼 무를 사다 깍두기나 생채를
해 먹었던 기억이 있다.
밥상에 김치가 올라오지 않는 날이
늘어나도 그냥 그러러니 하고 지냈던 것 같다.
솔직히 그다지 김치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았는데
역시나 나이를 먹으니 김치만큼
최고의 반찬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국에선 계절마다 다양한 김치를 맛볼 수
있다는 것조차 모른 채 지냈던 것 같다.
이곳에서 결혼을 하고 주위에 김치를 좋아하는
일본인 친구나 지인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늘 때가 되면 김치를 담았었다.
계절김치가 아닌 사시사철 배추김치,
깍두기, 오이김치를 3종 세트로 만들어
친구들과 함께 먹었다.
김치에서 물이 나오면 어떻게 하고,
신 맛이 생기면 어떻게 요리를 하는지
레시피를 알려줘서
내 주변 지인들은 다 알고 있다.
엊그제 만난 시무라 상 같은 경우는
고소한 참기름도 볶은 김치를 좋아해서
내게 생김치보다는
신김치를 달라고 할 정도이다.
깨달음은 특히나 좋아하는 파김치를
먹을 때마다 이 쪽파가 왜 일본에는
안 파는지 모르겠다며
분명 우리가 모르는 어느 시골에서는
팔지 않겠냐고 했다가 쪽파 자체가
한국산이어서 일본에는 없는가 했다가
늘 답이 없는 소릴 혼잣말처럼 한다.
[ 깨달음, 당신은 파김치가 좋아? 나는
열무랑, 얼갈이가 좋아 ]
[ 난 역시 파 김치가 최고로 좋아 ]
한국에 못 갔을 때, 파김치가 너무 먹고 싶어
쪽파처럼 생긴 일본 파(まんのうねぎ)로
두어 번 담아봤는데 역시나 매운맛도 약하고
파 자체가 연해서인지
김치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식사를 할 때 난 열무를 위주로 먹고
깨달음은 파김치를 주로 먹는다.
오늘 아침에는 깨달음이 열무는 비빔면에
넣어먹거나 냉면과 먹는 게 아니냐고 하길래
열무비빔밥, 열무 국수말이 등등,
어느 반찬과도 잘 어울린 게 열무라고
했더니 잘 모르겠단다.
[ 모르긴 뭘 몰라, 지난번 한국에서 당신이
아침마다 된장찌개에 익은 열무김치
올려 먹으면서 두 번이나 리필했잖아 ]
[ 아,, 그 잘 익은 열무,, 그 집 된장국이랑
환상적으로 잘 어울렸어, 아, 그리고
풋고추도 먹었잖아, 된장에 찍어서 ]
그날, 깨달음이 열무김치 두 번에 풋고추까지
리필해 먹어서 조금 죄송했는데 다음날
또 갔더니 아주머니가 우리 기억하셨는지
풋고추를 하나 더 올려주셨다.
청국장 먹던 날도 콩나물, 가지나물을
리필하길래 한국 사람들 식당에서 이젠
리필을 잘 안 하는 것 같으니까 당신도
좀 참으라고 했더니 리필이 안 되면
돈을 내면 되지 않겠냐면서 먹고 싶을 때
먹어야 한다고 했었다.
아무튼, 지금 우리 집 냉장고는 내가 좋아하고
깨달음도 너무 좋아하는 김치가
마음껏 리필할 수 있을 만큼
가득 담겨 있다.
깨달음은 여러 종류의 김치가 있으니까
부자 된 거 같다고 했다.
가족들의 수고 덕분에 우리 부부는
당분 한 행복한 식사가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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