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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많은 게 바뀐다. 2주 전부터 가스레인지 상태가 좋지 않았다. 3구 중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레인지가 접촉불량인지 점화되지 않았다. 기사분 출장료 4천엔과 체크사항을 적어둔 메모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난 일 때문에 나왔고 깨달음에게 맡겼다. 일하고 있는 중에 사진이 몇 장 날아왔다. 기사님이 다 뜯어보고는 고치는 단계를 넘었다고 그냥 교체하라고 했다며 티브이처럼 가스레인지도 수명이 10년인데 우리 가스레인지는 13년 전 모델이라고 했단다. [ 깨달음, 이번 기회에 IH로 바꾸면 어떨까? ] [ 깔끔하고 좋긴 한데 지진이 나면 전기가 바로 끊겨서 아무것도 못해. 그니까 가스가 좋아 ] [ 그래?... 나 IH로 바꾸고 싶었는데..] [ IH로 바꾼 사람들 휴대용 가스버너를 두대씩 상비해 놓은데.. 지진 대비용으로 ] 난 .. 2023. 9. 16.
이제부터 김치는 사먹기로 했다. 김치 택배가 왔다. 깨달음 거래처에서 보내온 것인데 재일동포라고 했다. 일본에서 살면서 김치 선물을 받아본 건 처음이라 약간 얼떨떨한데 깨달음에게 거래서 최사장이 추석선물 겸 공사 부탁한다고 겸사겸사 인사차 보낸 것 같다고 했다. 김치 회사 이름이 나카요시다. 이 김치의 수익금은 치바조선초등교에 지원금으로 쓰이고 있다는 내용과 사진, 편지지가 들어있고, 내용물은 배추, 깍두기, 무말랭이, 진미채, 창난젓, 냉면이었다. 모두 반찬통에 담으면서 하나씩 먹어봤더니 김치가 아주 상큼하고 간이 딱 맞아 입맛을 돋우는 맛이었다. 깍두기도 고소한 젓갈냄새가 나면서 상당히 맛깔스러웠다. 진미채는 내 입에 꽤나 달았고 창난젓은 늘 먹던 맛과 별반 차이가 없이 양념맛이 좋았다. 저녁식사 때 반찬으로 내놓은 걸 조금씩 맛을.. 2023. 9. 11.
후쿠시마산을 안 먹는 방법 [ 야, 너 다음에도 이렇게 무작정 오면 나 못 만나 ] [ 알아... 미안해 ] [ 못해도 2주 전에는 연락을 줘야지 ] [ 정말, 이번에는 누나 만날 계획이 없어서 연락을 안 했던 거였어. 근데 오다이바 왔는데 누나 집이 보여서..나도 모르게.. 히히. ] [ 미친... ] 대학원 후배가 갑자기 도쿄를 찾았다. 출장도 아닌 그냥 바람 쐬러 왔단다. [ 뭐 먹을래? ] [ 음,, 우나기(うなぎ 장어) ] [ 한국말 해 , 나 한국말 할 사람이 없다 ] [ 그래? 남편분,, 아,, 한국어 못하지.. 그럼 오늘은 무조건 한국말로 할게 ] 깨달음과 단골로 가는 곳은 당일 예약이 되지 않아 적당한 곳을 찾아 장소를 옮겼다. 니혼슈로 갈증 난 목을 축여가며 식사를 하는데 엊그제 만나던 것처럼 서로에게 익숙했다... 2023. 9. 7.
친구가 없는 사람들의 특징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코로나 핑계로 돌리는 것도 우스웠다. 약속날짜도 내가, 약속장소도 내가 결정해 주길 원해서 예약을 하고 좀 이른 저녁에 그녀를 만났다. 꼭 필요할 때만 연락을 하는 그녀를 보는 날도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했다. 보자마자 호들갑을 떨며 내 팔을 잡아 끄는 것도, 앉자마자 자기 얘길 하며 감정이 격해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는 것도 웃을 때 손뼉을 치는 것도 내가 깨달음과 어떻게 만났는지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묻는 거마저도 변함이 없었다. 지난번 만났을 때 했던 말들은 기억하지 못한 채 자기 말만 하는 그녀는 그대로였다. [ 케이야, 너 다리는 다 나았어? ] [ 다리? 골절상 입은 거 벌써 2년전이야..] [ 아,,그랬지..내가 깜빡했다 ] [ 뭘 깜빡이야, 6개월전에 만나.. 2023. 9. 5.
모든 부모는 자식보다 더 아프다 오랜만에 연락을 주셔서 솔직히 반가웠다. 그녀의 가족이 가와사키(川崎)로 이사를 했고 코로나 때문에도 볼 수가 없었다. 자기 집 근처에 맛있는 고깃집에서 보자길래 두말없이 약속을 잡았다. 가게 카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녀는 5년 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서 있었다. [ 오랜만이에요, 스즈키(鈴木) 상 ] [ 케이짱,, 오랜만이야~ ] 습관적으로 스즈카 상이라고 뱉고 나서야 낫짱으로 불러라고 했던 게 떠올랐지만 나보다 연배인 그녀를 친구처럼 부르긴 좀 어색했다. [ 스즈키상, 근데 왜 이렇게 예뻐졌어요? 살이 많이 빠지셨네요 ] [ 그래? 다이어트 좀 했지 ] 우리 맛있다는 소고기의 각종 부위를 주문하고 그간에 못다 한 얘기들을 풀어놓았다. 난, 무엇보다 그녀의 아들 소식이 궁금했다. 자폐증이 있는.. 2023. 8. 30.
후쿠오카는 먹거리 천국이다 후쿠오카 둘째 날, 전날 숙취가 남은 우린 아침부터 나가사키 짬뽕으로 시린 속을 달랬다. 마신 양으로 따지면 적었지만 맥주, 소주, 니혼슈, 와인까지 섞어먹은 탓인지 아침이 개운하지 않았다. 말없이 짬뽕 국물을 먹으면서도 깨달음은 오늘이 마지막이니 먹방을 제대로 해보자면서 뭘 먹을 건지 일단 대충 목록을 말했다. 식사를 하고 나와 쇼핑센터로 옮겨간 우린 깨달음이 새로 사고 싶다는 심플한 샌들을 사고 약간의 쇼핑을 더했다. 물가가 도쿄에 비하면 엄청 싸다면서 좀처럼 쇼핑에 관심 없는 깨달음이 적극적으로 텀블러와 메모장, 필기도구 그리고 비타민제까지 이것저것 구매했다. 그리고 전날 리스트에 올려두었던 나카스 리버크루즈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30분 정도 후쿠오카 시내를 도는 코스로 저녁 6시 이후.. 2023. 8. 25.
남편이 부른 한국 노래의 진심 추석연휴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말 그대로 휴식을 취했다. 늦더위가 사람을 지치게 한 탓인지 우린 연휴라지만 무언가를 할 의욕마저 상실해 버린 것처럼 시원한 에어컨 바람 속에서 뒹굴뒹굴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가스불 켜고 음식을 하는 것도 사람을 지치게 하다 보니 전자렌지에 돌려서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이나 외식을 하면서 연휴를 보냈다. 그러다 우연히 티브이에서 나온 모츠나베(もつ鍋-곱창전골)를 같이 보다가 곱창 좋아하는 깨달음이 도저히 못 참겠다며 후쿠오카(福岡)를 가자고했고 마침 검색해 보니 바로 갈 수 있는 티켓이 있어 속옷만 몇가지 캐리어에 구겨넣고 바로 공항으로 달렸다. 예전엔 미리 계획 세워 갔던 여행을 요즘은 기분 내키는 대로, 몸이 움직이는 대로 시간 되는대로, 마음이 시키는 대로 본.. 2023. 8. 21.
좋은 인연은 서로가 만들어 간다 난 그들에게 줄 선물을 일단 사고 번화한 시부야(渋谷) 거리를 거닐며 왠지 이곳은 나와 맞지 않는 장소라는 생각을 했다. 깨달음 회사가 있어서 자주 오는 편이지만 왠지 와도 와도 익숙해지지 않는 곳이다. 스크램블 교차로를 지나 골목으로 들어서자 약속 장소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모두가 시간을 낼 수 있는 건 오봉야스미(추석연휴)뿐이었고 서로의 집과 교통이 편한 곳을 찾다 보니 시부야였다. 내가 협회 일을 그만두고 나서 그들과 송별회를 하지 않았던 건 직책은 내려놓았지만 회원의 일원으로서 앞으로도 얼굴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사양했었다. 굳이 송별회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마련한다는 게 우습기도 하고 내겐 별 의미가 없었는데 꼭 해야 한다고, 안 하면 안 된다는 하시노(橋野) 상의 강력한? 제의로 모두가 자리를.. 2023. 8. 16.
아픈 건 자신의 몫이다 2년 전, 여름 대상포진이 걸려 통증으로 이를 갈았던 아픈 기억을 두 번 다시 맛보고 싶지 않아 대상포진 예방백신을 맞았다. 맞기 전에 효과와 부작용을 일단 숙지하고 맞았는데 맞은 날 저녁부터 고열이 나고 몸에 잠들어 있던 혈관들이 백신과 싸우는 중인지, 백신을 받아들이고 있는 중인지 온 몸이 쑤시고 저리고 열이 올라 한마디로 형용할 수 없는 통증으로 한 숨을 잘 수 없었다. 급하게 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원래 발열이 있는 거라고 코로나 백신 때처럼 몸에서 면역을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니 2,3일 지나면 좋아질 거라고 했다. 코로나 백신을 맞았을 땐 어깨가 약간 무거운 느낌만 들었을 뿐 아무렇지 않았는데 대상포진 백신이 이렇게 보대끼고 힘들 거라 전혀 생각지 못했다. 얼음주머니를 두 개나 끌어안은 채 침대.. 2023. 8. 10.
애정결핍이라고 하니... 신주쿠역(新宿駅) 개찰구를 나오자 온통 북소리와 경쾌한 음악소리가 도로를 점령한 채 축제열기가 뜨거웠다. 4년 만에 열린 신주쿠 에이사(エイサー) 축제가 있는 줄 모른채로 미션 임파서블을 보기 위해 나왔는데 사람들로 특히 외국인 관광객이 거기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에이사 축제는 유명한 오키나와(沖縄) 전통행사로 크고 작은북을 치면서 남녀춤꾼들이 오키나와 민속악기인 산신(三線)에 맞춰 거리를 돌며 북과 함께 춤을 추는 축제이다. 둥, 둥 울리는 북소리도 그렇지만 그에 맞춰 절도 있는 춤을 선보이는데 음악도 그렇고 보는 이들도 같이 신명이 나게 만든다. 3시간의 긴 영화를 보고 나온 우린 일단 북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보았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한 팀이 되어 창의적인 춤을 추기도 하고 익살맞은 춤도 추는데 .. 2023. 7. 31.
이혼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깨달음 친구인 타무라 상(田村) 에게 김치를 보낸 건 한 달 전이였다. 늘 그렇듯, 여름이면 여름대로, 겨울이면 겨울대로 일본인 지인들에게 김치를 보내는 것도 10년이 지나가고 있다. 연일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에 이열치열하도록 칼칼한 김치로 좀 맵게 담아 보냈다. 이번에도 배추, 무, 오이김치 외에 창난젓과 진미채 넣었다. 맛있게 잘 먹고 있다는 문자를 받았는데 그가 맥주를 보내왔다. 깨달음이 보자마자 이 자식은 맨날 술만 보낸다면서 집에서 술 안 마시는데 쓸데없이 보냈다며 투덜거렸다. 대학동창인 타무라 상과는 지금까지도 일 관계로 자주 얼굴을 보는 사이다보니 할 말 못 할 말 다 털어놓은 절친중의 한 명이다. [ 다시 돌려 보내버릴까? ] [ 그건 실례겠지... ] [ 김치 보내준 당신한테 고마워서 .. 2023. 7. 25.
옆 집 아줌마가 보낸 편지와 남편 저녁에 퇴근하고 돌아온 깨달음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손에 들린 편지를 내게 밀더니 옆집 아줌마가 보낸 거라고 했다. 장마가 시작되던 한 달 전, 각 엘리버이터에 공지된 내용을 보고 바로 발코니 배수로 청소를 했는데 아줌마 편지 내용을 보니 먼지나 쓰레기가 배수로에 쌓여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막혀서 자기쪽으로 넘어오고 물이 잘 내려가지 않으니 청소를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 깨달음, 우리 지난주에도 청소하지 않았나? ] [ 했지, 내가 지금 가서 얘기하고 올게 ] [ 아니, 잠깐만,,] 말릴 틈도 없이 다시 나간 깨달음이 바로 돌아왔다. [ 없네...] [ 있어도 무서워서 안 열어줬겠지.. 그냥, 우리도 편지를 써서 우편함에 넣어두는 게 나을 것 같은데 ] 깨달음이 귀찮은 표정을 하며 내일 아침에 다.. 2023. 7. 19.
시부모님 1주기, 모든 걸 덮었으면 좋겠다 늘 그렇듯 우린 아침 일찍 신칸센을 탔다. 전날 잠을 설친 탓인지 아침부터 더운 탓인지 유쾌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서방님에게서 시부모님 1주기를 한다며 날짜를 알려온 온 것은 2주 전이었다. 우리 스케줄도 묻지 않고 통보만 해 오는 서방님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냥 그러러니하자 했다. 시부모님도 두 분 모두 돌아가시고 서방님을 볼 날이 앞으로 얼마나 있겠냐 싶은 것도 있고 언제가 될지 모를 마지막까지 가족으로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는 나만의 인간관계 마무리를 유지하고 싶었다. 나고야에 도착해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뛰는데 등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깨달음도 땀 범벅이 된 채로 버스에 올라타 바로 쓰러지듯 잠을 청했다. 배가 고파왔지만 점심을 먹을 시간이 없었고 버스안에서 뭘 먹는.. 2023. 7. 10.
부모도 이젠 혼자 살아가야 한다 장마가 끝나고 난 이곳은 매일 습한 공기와 텁텁함이 계속되고 있다. 더위 탓에 입맛이 없어진 건 나뿐만이 아닌 깨달음도 마찬가지었다. 개운한 게 먹고 싶어 찾은 일식집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반 이상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요즘은 도쿄 도심뿐만 아니라 변두리까지 관광지로 둘러본다고들 하던데 우린 그들을 보며 젊음이 좋긴 좋다는 말을 했다. 가게 내부를 휙 한번 둘러보던 깨달음이 부모님이랑 같이 관광 온 사람은 한 팀도 없다면서 혼잣말을 했다. 지난주부터 깨달음에게는 고민거리가 생겼다고 했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아카네(赤根)상이 갑자기 시골로 내려가게 됐는데 그만큼 일을 잘하는 친구를 못 구해서 일이 밀리고 있는 상태란다. 20년 전부터 깨달음 회사 일을 해왔던 아카네 상은 누구보다 3D도면을 잘 치고 일 .. 2023. 6. 28.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상 [ 케이야, 잘 있어? 여긴 너무 덥다, 거기도 덥지? 오늘 참외 먹다가 너 생각나서.. 니가 참외 좋아하는데 거기서 못 먹었다고 그랬잖아 ] [ 아니야, 지금은 코리아타운에서 팔아, 근데 요즘 넌 무슨 반찬 해 먹어? ] [ 반찬? 음,,별 거 없어, 그냥 있는 거 먹지] 한국의 가족이나 친구들과 통화를 하면 난 무의식적이라기보다는 습관적으로 같은 질문을 한다. [ 무슨 반찬에 먹었어? ]라고 그러면 누구는 남편이 좋아하는 육개장을 끓여 먹었다고 하기도 하고 누구는 두릅이 많이 나와서 두릅을 삶았다기도 하고 누구는 오징어볶음을 했다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밥 하기 귀찮아 집 근처에서 닭볶음을 시켜 먹었다고 한다. 난 한국에서 돌아온 후부터 무슨 이유인지 체중이 줄고 있다. 더워지면서 입맛이 없어진 게 원.. 2023. 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