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자겠다고 들어갔던 깨달음이
거실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다.
[ 뭐 해? ]
[ 음,,그냥,,]
[ 바빠? ]
[ 음,,조금,,,,,]
노트북을 한번 힐끔 쳐다보고는 옆에 앉는다.
올 하반기에 들어서 괜시리 바쁘다.
읽어야할 책도 페이지가 그대로인 채로
침대에 널부러져 있고,....
하루가 너무도 쉽게 지나가 가버린 듯해서
아쉬운데 새로 찾아 온 오늘을
또 정신없이 보내버리고 만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들자고 일기장 맨 밑에
무슨 주문처럼 적어 넣고 있지만
24시간을 얼마나 알차고 보람되게
사용했는지 잠자리에 누워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어 허무하기 그지 없다.
밀린 스케쥴을 다시 정리하고
블로그에 들어와 댓글들을 읽고
지난주에 찍어둔 사진을 포토샵으로
수정하고 정리를 했다.
이 얘기에는 저 사진이 들어가야 되고
이 사진은 삭제해야하고,,,,
다음주 통역에 필요한 공부도 좀 해야하고,,
00시험공부도 해야하고,,,손가락은 바삐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면서도
머리속은 몇 갈래씩 다른 생각들로 분주하다.
그 때 깨달음이 다시 시계를 가르킨다.
12시가 넘어가고 있다.
[ 내가 좀 도와줄까? ]
[뭘?]
[ 블로그 쓰는 거,,,]
[ ............................]
[ 내가 좀 도와줄게, 블로그 쓰는 거 아니였어? ]
[ 음,,지금은 신문기사 정리중이야,,그렇지 않아도
새 글 올려야 되는데 그럴 여유가 없네 ]
[ 그럼, 옆에서 내가 얘기하는 걸
그대로 당신이 옮기면 되잖아...]
[ 무슨 얘기 할 거야? ]
[ 음,,내 생각들,,,]
[ 당신은 블로그를 뭐라 생각해? ]
[ 그냥 우리의 삶을 공유하는 콘텐츠라고 생각해]
[ 왜 공유해야 돼? ]
[ 많은 사람들이 일본이라는 나라, 일본사람,
한일커플에 대해 궁금하고 알고 싶어 하니까
그걸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이해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 그에 따르는 리스크는 알고 있지?]
[ 뭐? 악플? ]
[ 악플도 악플이지만 이렇게 바쁘고 그럴 땐
잠시 블로그를 쉬고 싶어, 솔직히..]
[ 음,그건 안 돼.매일 매일 새글을 기다리는 분들이
많잖아,그 분들을 그냥 돌려보내면 미안하잖아, ]
[ 당신은 내가 블로그 활동하는 게 좋아? ]
[ 응,,당신이 한국사회에 멀어지지 않게
연결고리가 되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나는 생각해.
그리고 여러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근데,,당신이 이웃님들을 만나려고도 하지 않고
매스컴에서 나가려고 하지 않아서
난 좀 불만이야,,]
[ 그게 불만이야? 블로그에 대한 생각이
나와 너무 달라서 할말이 없네...]
[ 당신은 블로그 이웃님 중에 만나고
싶은 사람 없어?]
[ 있지..그런데...만나서 무슨 얘길 하겠어..]
[ 그냥 좋은 사람들 만나서 서로의 사는 얘기를
나누고 그러는 게 삶이잖아..
당신은 블로그를 5년넘게 하면서도
온라인상의 만남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 것 같애 ]
제대로 내 속을 꿰뚫고 있어서인지
난 아니라고 부정하지 못했다.
[ 나는 당신 블로그에서 제일 중요시 하고 싶은 게
나같은 일본인도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고
여러 관점에서 일본인을 이해하고,
일본인들의 사고, 사회생활 등등
간접적으로나마 가깝게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야,,물론, 당신이 한국사회의 흐름을
파악하는데도 큰 통로가 되었으면 하고,,]
[ 이 블로그가 그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
[ 그러지,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양국간을
이해하는데 미약하지만 당신 블로그가
도움이 되었으면 해,
서로의 나라를 알아야만이 오해가 없고,
행여 오해가 생기더라도 그걸 풀 수 있잖아,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간의 이해가 필요하고
그 나라의 생활상, 문화를 접할 기회가
주어져야하잖아, 아. 조선통신사가
이번에 유네스코에 등재 되었잖아,,
한국과 일본은 정말 친했고,,
지금도 친하게 지내고 있는 사람들,
나처럼 친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 수 있게 당신이 열심히
블로그 활동을 했으면 해....]
그러더니 갑자기 부채를 들고 흔들기 시작했다.
[ 대한민국, 대한민국, 이것도 블로그 이웃님이
보내주신 거잖아, 나는 과자도 좋지만 이렇게
한국적인 걸 보내주신 것에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니까 바쁘더라도 블로그를 계속 했으면
좋겠어~ 어떻게든 당신이 이렇게 글을 올리는 게
작은 메시지일지 몰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거야,,,
그니까 좀 힘들어도 한국과 일본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사명감을 갖고 해~]
[ ............................... ]
그렇게 폼을 잡고 한장 찍으라고 하더니
자러 가겠다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블로그를 시작하고 채 1년이 지나지 않았을
무렵부터 깨달음을 만나고 싶다는 분들이 많았다.
지금도 사인회를 언제 할 생각인지
깨달음 얼굴의 하트는 언제 벗기실 건지
궁금해 하시는 분도 많다.
깨달음은 일본에 오시는 모든 이웃님들을
만나고 싶어하지만 아직까지 난
100% 못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솔직히 아주
가끔은 나도 참 만나고 싶은 분이 있다.
정말 만나서 아무말 없이 차를 한 잔 하고 싶은
분들이 계신다.
깨달음은 블로그에 대해 조금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지만
속깊은 대화를 할 수 있어 좋았다.
다큐멘터리 출연제의를 몇 번 받은 후로는
약간 연예인병?이 들어있다고 생각했는데
깨달음이 내 블로그에 대해 이렇게
진지하고 깊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몰랐고
오늘을 계기로 다시한번 지난 5년을
돌아보게 되었다.
깨달음 바람처럼 내 블로그가
일본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계시는 분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된다면, 사명감을 갖고
계속해 나가야할 것 같다.
악플이나 억측들이 날 지치게 할 때가
있지만, 그것도 관심이라 생각하고
내가 알고 있는, 내가 경험한 일본,
내 눈으로 보고 체험한 일본인, 일본사회를
앞으로도 좀 더 리얼하게 보여드려야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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