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퇴근시간에 맞춰 1인용 침대가 도착했다.
깨달음 방에 놓기 위해 미리 레이아웃을 바꾸고
자리를 마련해 두었다.
양복을 벗고 바로 조립을 시작한 깨달음.
[ 어려워? ]
[ 응, 조금,,,꽤 복잡하네...]
30분쯤 지나 들어다봤는데 그때까지도
형태를 못 찾고 있었다.
깨달음은 남자인데 기본적으로 남자들이
잘하는 조립이나 기계설비, 컴퓨터가 서툴다.
그리고 자신은 결코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하지만
상당한 길치이다.
난 그런 깨달음이 처음엔 답답했지만
결혼생활을 거듭해가면서
깨달음의 서투른 부분은 인정하고
잘 하는 부분을 높게 평가하기로 했다.
그렇게 꼬박 1시간 반이 지나서야
깨달음은 조립을 완성했고
아주 만족해하며 힘을 너무 많이 썼으니
고기를 먹으로 가자고 했다.
늘 주문하는 메뉴들이 나오고 맛있게 고기를 구워
먹다가 내가 물었다.
[ 당신은 원래 기계치였어? ]
[ 응,,]
[ 조각이나 만들기는 잘하는데 공학계는
모르겠어.난 남자여도 이공계쪽 머리가
아닌가 봐, 그래서 컴퓨터가 어려워..]
깨달음 대답에 내가 고개를 끄덕끄덕 했더니
나에게도 묻는다.
[ 당신은 무슨 과목을 잘 했어? ]
[ 나는 예체능계를 잘 했어.원래 공부 못한애들이
예체능계를 잘 하잖아,,]
[ 왜 그렇게 자기 자신을 비약해?]
[ 비약이라기 보다는,,지금도 공부가 쉬운듯
어려워서 내 머리를 원망할 때가 많아,
당신은 공부 잘 했지?]
[ 응,,골고루 그럭저럭 했어..]
그런 얘기들을 나누며 고기를 다 먹고
난 냉면을 깨달음은 왠일인지 부침개를 시켰다.
[ 오늘은 국물 안 먹어? 갈비탕 같은 거,,]
[ 응,,오늘은 부침개가 먹고 싶어 ]
[ 부침개는 내가 집에서도 얼마든지 만들어
주잖아,,만들기 힘든 거 주문하지 그래? ]
[ 아니야, 오늘은 부침개가 먹고 싶어! ]
[ 후회 안 할꺼지? ]
[ 응! ]
그렇게 식사가 나오고 깨달음이 묵묵히
부침개를 먹더니 내게 접시를 밀면서 입을 연다.
[ 여기 부침개 맛 좀 봐,,완전히 웃긴 맛이야,,]
[ 보기에는 괜찮은 것 같은데...]
[ 어떻게 끝까지 먹어보려고 했는데
먹다보니까 화가 나,,그래서 그만 먹을래..]
그러더니 부침개 하나를 들고 분석에 들어갔다.
[ 기름을 더 둘러서 센불에 바삭하게
지져야하는데 팬케잌 굽듯이
천천히 익혀서 밀가루 냄새가 너무 많이 나,
반죽도 딱딱하고 계란을 넣던지,
아니면 부침가루를 사용해야 되는데,,
해물 오징어도 3개밖에 안 들어 있어..
여기 봐 봐, 부추가 가운데만 몇가닥 있고,,]
[ 당신 있잖아,,그럴때마다 진짜 아줌마 같애..
여성 호르몬이 나보다 더 많이 나오는 거 아니야?
원래 남자들은 당신처럼
이렇게 부침개를 분석하고 그러지 않을거야,
여자인 나도 잘 안하잖아,,맛이 없으면
없구나 하고 안 먹으면 되는데 당신은
꼭 분석을 하려고 하더라,,,]
[ 여자 아니야, 난자 난자!! ]
목소리에 힘을 실어 말했지만 [ 난자]라는
단어에 웃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 난자가 아니고 남자,난자는 여자라는 뜻이야
발음을 제대로 해 줘~]
내가 웃으면서 얘기한 게 화가 났는지
날 향해 또 반격을 했다.
[ 당신은 여자지만 속은 남자잖아~]
[ 그건 또 뭔 소리야? ]
[ 우리 거래처 사장이 점을 잘 보는데
우리집에 남자가 둘이 있다고 그랬어... ]
[ 나를 두고 하는 소리야? ]
[ 응, 여자지만 남자와 같다는 거지,
당신 원래 좀 남자같잖아,,
성격도 그렇고 힘도 세고,싸움도 잘하고,, ]
[ ........................... ]
이 이야기를 더 끌고 가봐야 서로에게
좋을 게 없을 것 같아 그냥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에 와서
또 깨달음이 이상증세?를 보였다.
[ 그렇게 슬퍼? ]
[ 세상에 어쩜 저렇게 멜로디가 슬플까...
가사도 너무 슬프잖아,,이병헌이랑 그 드라마가
생각나서 .....흐흐흑 ]
[ 내가 봤을 때 요즘, 아니 요 몇년 당신 속에
여자가 사는 것 같애, 옛날에는 드라마나 영화보고
울었는데 지금은 음악만 들어도 울잖아,,
정말 호르몬 이상이 온 건지, 원래 당신 마음 속에
여자가 살았는지 궁금해~]
내 말에 별 반응을 안 보이고 계속해서
눈물을 훔치던 깨달음이 자신도 늙었으니까
여성 호르몬이 많아졌을 거라며
그래서 눈물이 나는 것이고, 원래 감수성이
풍부한 남자였다며 말 시키지 말란다.
노래 감상하고 싶으니까...
[ ............................. ]
이 은미씨 노래 [녹턴]의 전주곡이 나오면
바로 울었던 깨달음이 백지영의 [잊지 말아요]를
들어도 똑같이 운다. 열번 들으면 열번 다 운다.
그리고, 지금은 팬턴싱어를 보면서 하모니가 너무
좋다고 울고, 본선에 진출 못한 출연자들이
짠해서 울고, 열심을 다하는 모습을 모면서
울고,,계속 눈물을 훔친다.
그렇게 프로가 끝나고 내가 다시 말을 걸었다.
[ 슬펐어? 우는 건 좋은데,당신 너무 슬프게 울어,
가사 내용을 말하기도 전에 감성에 젖어 울잖아,,
그리고 매번 우는게,,좀,,뭐랄까,,]
[ 마음이 따뜻해서 그래!
당신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잖아!
열번 들어도 슬프니까 우는 거지,.감동을 받고,
노래 가사에 취해서 눈물이 나는 거야,
그 안타까운 마음을 공감하니까 자연스레
눈물이 나오는 거야,,,
그리고 당신은 당신 몸에 남자가 사는 거야?
그런게 아니잖아, 자기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는데
호르몬이네 뭐네 그게 무슨 필요가 있어? ]
[ .......................... ]
콧물까지 닦으면서 열심히 자기 변론?을
했지만 난 모든 게 감성적인 성격탓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어릴적부터 여성적 성향이 많았던 깨달음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남성 호르몬의 감소와
여성호르몬의 과다분비로 인해
더 여성화 되어가는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 남편, 깨달음 몸에 여자가 살고 있는 게
분명하다. 여자처럼 다리를 꼬기도 잘하고,
여자 흉내도 잘 낸다. 무엇보다 내 친구들, 후배들,
아줌마들 모임에서도 몇 시간이고
대화가 끊기지 않고 함께 아주 잘 논다는 것이다.
길치인 것도, 수다를 좋아하는 것도,
울기도 잘하고, 기계쪽도 약하고,,,,,
이 모든 걸 여성 호르몬 탓으로 돌리는 게
납득이 안 가지만 그냥, 그러러니하고
받아들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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