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내내 깨달음은 자기 방에서
나는 내 방에서 각자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주말을 즐기고 있었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3시가 다 되어갈 무렵
깨달음이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 뭐 해? ]
[ 책 봐 ]
[ 우리 밖에 나갈까? ]
[ 어디? ]
[ 시장에 ]
[ 왠 시장? 뭐 살 거 있어? ]
[ 아니. 그냥,, 사람들 구경하러...]
쯔키지 (築地)시장은 이미 영업이 끝났고
다른 재래시장은 우에노(上野)밖에 없는데
굳이 쇼핑할 것도 아니면서 가야 하는 이유가
뭔지 다시 물었더니 살 게 생겼다고 했다.
한국 같으면 재래시장에서 이것저것
살 게 많지만 이곳에서는 특별히
사고 싶은 것도, 살 것도 없어 그냥
시장 분위기를 느끼고 싶을 때 가끔 찾는 곳이
바로 이곳 우에노 아메요코(アメ横)이다.
한국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재래시장이지만
이곳은 세계 각국의 식재료를 구매할 수 있어
다국적 사람들이 자주 찾은 곳이다.
[ 저기 한국 식당 새로 생겼나 봐 ]
[ 그러네..예전에 없지 않았어? ]
[ 완전,,먹거리 거리로 변했네..]
태국, 대만, 중국, 네팔, 인도, 베트남, 터키,
아시아계 식당겸 노점들이 많아져 분위기가
시장이라기 보다는 먹자골목 느낌이
물씬 풍겼다.
우리가 작년 추석 때, 추석 분위기 느끼고
싶어서 왔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 저기 봐, 저기도 새로 생겼네...]
[ 맞아,,케밥 가게가 더 넓어졌어..]
[ 역시 먹는 장사가 돈을 번다는 걸
알아차렸나 봐, 다들.. ]
오후시간인데도 노천 테이블은 어느 가게나
만석이였고 깨달음이 치즈 핫도그 앞에서
좀 머뭇거리다 발길을 돌렸다.
[ 깨달음, 뭐 살 거 있다면서, 뭐 살 건데 ]
[ 살 게 있었는데 그냥 안 살 거야..]
[ 뭐였는데? ]
[ 음,꼬막,,근데 없어... 그냥 아버지한테
보낼 센베이(煎餅)나 사야겠어 ]
[ 그래서 아까 생선가게를 유심히 본 거야? ]
[ 응,, 딱 한 군데 팔았는데 아무리 봐도
싱싱해 보이지 않았어, 쯔키지 수산시장에
갔어야 했는데 너무 늦어서 혹시나하고
여기 와봤던 건데 역시나 아니었어 ]
오전에 자기 방에서 제철음식 책자를 보다가
꼬막 채취하는 기사를 봤더니 갑자기 먹고
싶어졌다고 했다.
아버님이 좋아하는 사탕도 몇 가지 골라 사고
나오는데 한국 과자 허니버터 칩이 있어
깨달음에게 사주겠다고 했더니 싫단다.
[ 예전에 당신이 엄청 좋아했던 거야 ]
[ 알아, 근데 지금은 과자 먹을 기분이 아니야,
꼬막을 못 사서 우울해 ]
[ ....................................... ]
맥이 빠진 표정을 하고 날 쳐다보길래
동남아쪽 해산물을 많이 취급하는
지하에 있는 상가쪽을 가보자고 했더니
점점 사람들도 몰려들고 있고 지하는 왠지
코로나 위험이 더할 것 같아서 싫단다.
[ 그럼 포기할 거지, 깨달음? ]
[ 응,, 그냥 집에 가는 게 낫겠어 ]
[ 그냥 가기 그러면 당신 좋아하는
쇼트케이크 먹을래? ]
[ 응, 그건 먹을래 ]
역 쪽으로 걸어 나오며 왜 내가 깨달음 기분을
달래줘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분위기가
달래줘야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https://keijapan.tistory.com/899
지금은 꼬막철이 아닌 것도 있고 역시
여기가 아닌 쯔키지(築地)에 가야만이
제대로 된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으니
좀 더 추워지면 그때 한 번 가보자고 했다.
케이크의 생크림이 입술에 묻은지도 모르고
맛나게 먹으면서 한국은 사시사철
먹을 수 있지 않냐고 묻는다.
[ 사시사철은 아니지만 거의 있다고 봐야지 ]
[ 그것 봐, 언제든지 먹고 싶으면 먹을 수 있는데
여기서는 그게 안 되니까 짜증 나..]
먹고 싶을 때 어떻게든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데
그럴 못하니 짜증이 나는 모양이다.
https://keijapan.tistory.com/1182
언제인지 확실히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우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이니 먹고 싶은 것은
주저하지도 말고, 돈 생각 말고, 그 때 그 때,
바로 바로, 마음껏, 실컷 먹자는 얘기를 나눴다.
아마 코로나로 사망자들이 늘어가는 걸
보면서 나왔던 얘기인 것 같은데 돈이
있어도 건강 잃으면 아무 소용없고
건강히 살아있고, 식욕이 남아있는 동안에는
먹고 싶은 것은 가격 생각말고 무조건
먹자는 주의로 바뀌었다.
https://keijapan.tistory.com/1495
그렇게 생각을 전환해서인지 오늘처럼
이렇게 못 먹는 경우가 생기면 굉장히
서운해하고 실망스러워 했다.
[ 참은 김에 조금만 더 참아, 내년에
한국 가면 삼시세끼 꼬막 먹게 해 줄게 ]
[ 정말이지? ]
[ 응, 걱정 마 ]
[ 나, 그 팔딱팔딱 뛰는 대하도 먹고 싶은데 ]
[ 알았어 ]
[ 또. 완전 코를 톡 쏘는 잘 삭힌 홍어도,
그리고 종로에서 먹었던 전어 소금구이도,,,
아, 과메기인가, 그것도 안 먹어봤는데..]
[.................................... ]
https://keijapan.tistory.com/1347
대하,전어,과메기는 제철에만 먹는 것인데
어찌 다 외우고 있었을까...
난 홍어를 못 먹는데, 그것도
제대로 삭힌 걸로 먹고 싶다는 말에
더 이상 위로의 말을 찾지 못했다.
원래 식탐이 없었던 깨달음은 뭔 일인지
한국에만 가면 사람이 돌변한 것처럼
먹는데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다.
그걸 알기에 뭐든지 깨달음이 원하는 건
다 먹고 즐길 수 있도록 해주고 싶은데
지금은 갈 수 없으니
나도 해소해줄 길이 없다.
작년에 동생이 보내준 꼬막 통조림으로
반찬을 만들었는데 통조림 특유의 맛이
난다면서 진짜 꼬막이 먹고 싶다며 울부짖었다.
코리아타운에서 어느 정도 해결하면 되겠지만
짜장면 이외는 만족감을 얻을 수 없다고 하는
까다로운 사람이니 그냥 한국 갈 때까지
참을 수밖에 없다는 걸 본인도 잘 알고 있다.
이렇게 입맛으로만 보면 깨달음을 누가
일본 사람이라고 할까..
참 여러모로 연구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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