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 정형외과에 잠깐 들렀다
오겠다던 깨달음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시간이 지나서도 연락이 없었다.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걸 보며
나는 작은 와인 한 병을 느긋하게 마셨다.
깨달음 몫으로 주문한 치즈케이크를
거의 먹어갈 쯤에 도착한 깨달음이
왼쪽 다리를 절둑거렸다.

회사 계단에서 발을 접질렸는데 처음에
견딜만했더니 자꾸만 욱씬거려서
도저히 못 참고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라며
힘줄이 놀란 것 같다며 바르는 진통소염제를
받아왔다고 한다.
[ 당신이 걸으면서 핸드폰 보지 말라고 그랬는데
내가 말을 안듣다가,,...]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미리
이실직고하듯 말을 꺼냈다.

화덕피자 전문집으로 자리를 옮겨 가는데
상당히 아파하면서 걸었다.
[ 괜찮겠어? 택시 탈까? ]
[ 아니야,, 그냥 천천히 걸으면 괜찮아 ]
[ 깨달음, 그냥 집에 가는 게 낫지 않아?
예약 취소하면 되잖아 ]
[ 아니야, 내 입이 지금 피자를 원해,
그래서 꼭 피자를 먹어야겠어 ]
[............................ ]

나 같으면 그냥 집에서 쉴 것 같다고 했더니
자기는 목발을 짚고라도 맛집을 갈 거란다.
[ 당신은 먹는 것에 정말 진심인 것 같애 ]
[ 돈 버는 것도 맛있는 거 먹기 위해
버는 거잖아, 내가 열심히 일하는 이유야 ]
[ 물론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뭐랄까,,
매번 너무 진심을 다하는 것 같아서 ]
[ 나한테는 먹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해.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그걸 골라 먹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데..
그 맛있는 것들을 마음껏, 돈에 구애받지 않고
사 먹을 수 있게 돈을 버는 거야 ]

피자가 나오고 깨달음은 무슨 의식을 하듯
포크와 나이프로 치즈를 반으로 조심스레 잘라
정중하게 자기 접시에 담아 덜고는
두 손으로 가볍게 들어 한입 물었다.
[ 음,,, 향이 죽인다.. 너무 맛있어...]
[ 나도 한 조각 먹어도 돼? ]
[ 응, 한 조각 먹어 ]

한 조각이라고 똑 부러지게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을.... 먹는 것 앞에서는 배려도
양보도 눈치도 사라지는 깨달음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매번 같은 식으로
대답을 할 때마다 얄밉다는 생각이 든다.
난 아직까지도 깨달음이 음식 앞에서도
너그럽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는 것 같다.
연이어 파스타가 나오고 앞접시에 조금 덜어서
줬더니 치즈를 뿌려 돌돌돌 말아먹는다.
[ 더 줄까? ]
[ 아니, 피자 한 판 더 나오면 그거 먹을 거야 ]

피자 사이즈가 약간 적은 건 사실이었지만
두 가지 맛을 보고 싶었던 깨달음은
이번에는 꿀을 꼼꼼히 발라 맛나게 먹었다.
내가 쳐다보고 있었더니 한 조각
먹으라며 내 접시에 올려주는 깨달음에게
맛있는 거 먹을 때 표정을 얘기해 줬더니
본능에 충실하는 인간의 모습이라고 했다.

그렇게 먹고 나와서 집으로 오는 길에
커피를 마시겠다고 들어간 카페에서
이 집의 시그니처인 계란빵과 크림파이를
주문해서 먹었다.
[ 여기 계란빵은 어쩌면 이렇게 간이
딱 맞을까? 몇 개라도 먹을 것 같애 ]
[ 당신이 잘 먹으니 좋다.근데 다리는 안 아파? ]
[ 응,,맛있는 거 먹으니까 안 아파,,]
[. ............................ ]

결혼하고 15년이 돼 가는데 깨달음은 해가
거듭될수록 먹는 것에 중심을 크게 두고 있다.
먹기 위해 산다는 의미는 나도 공감하지만
건강이 약간 우려된다고 했더니
건강진단에 아무 이상 없었다며
지금처럼 자기는 먹고 싶은 것들만
먹으며 살 거란다.
[ 근데. 지금 내가 못 먹고 있는 게 있어 ]
[ 뭘 먹어? 다 먹으면서 ]
[ 꼬막 ]
일본인이 한국 여친에게 감사한 이유
깨달음 후배분이 많이 늦을 거라는 연락이 와서 우린 일단 간단하게 건배를 했다. 오늘 우리가 만나려고 기다리는 분은 깨달음과 20년 이상 알고 지낸 후배로 40대 후반의 돌싱분이다. 40분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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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막은 여기서 안 파니까 못 먹지..]
아무리 찾아봐도 한국에서 파는 참꼬막은
찾아볼 수가 없어 먹지 못하고 있는데
꼬막 먹고 싶어 한국에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정도라고 했다.
[ 먹고 싶은 걸 못 먹는 것도 고통이야,,
보고 싶은 사람 못 보는 것과 같아,, ]]
[ 고통까지 느낀다니 할 말이 없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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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던데 깨달음도 별 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먹고 싶은 걸 다 먹고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냐고 위로 같은 걸 해줬지만
먹탐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
심히 걱정인 한편, 돈 버는 목적이
뚜렷하고 심플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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