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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전철 안에서 소리 죽여 웃었다

by 일본의 케이 2024.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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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비인후과 선생님은 후각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는 중이니 걱정 말라고 했다. 사람에 따라

한 달이 걸리는 경우도 있는데 나 보고는

양호하다고 덧붙였다.

깨달음이 기다린다는 커피숍에 갔는데

한국어 단어집을 보고 있었다.

[ 깨달음, 공부하네.. 번역기 사면 

굳이 할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어? ]

[ 그랬지. 그렇지 않아도 오늘 당신이

자동번역기 사 준다고 해서  미리 가서 살짝

기능이랑 사용법을 체험해 봤는데 지금

쓰는 어플이랑 별 다를 게 없더라고 ]

[ 그래도 번역기는 100개국 이상

번역하는 기능이 있고 무엇보다 당신이

한국어 공부하는 게 힘들고 능률이 안 올라

산다고 하지 않았어? ]

[ 그랬지.. 근데.. 좀 생각해 보려고 ]

 

예정대로라면 지난주에 사려고 했던

번역기인데 몸 컨디션이 별로여서 이번주에

사주러 나왔는데 살까 말까 고민 중이라고 한다.

[ 그래서 다시 한글 공부하는 거야? ]

[ 한글 공부는 날마다 하고 있다니깐,

늘지 않아서 그렇지.. 기계는 좀 더

내가 생각해 보고 정말 필요할 때

사달라고 할게. 그때 사 줘 ]

새로운 물건을 살 때면 항상 몇 번

주저하고 갈등하는 깨달음 버릇은 좋은 면도

있지만 한편으로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언제든지 마음이 변하면 바로 말을 하라고

했더니 알겠다면서 한국어 단어집을

주섬주섬 소중히 가방에 넣고

커피숍을 나왔다. 

[ 오늘도 여긴 외국인이 더 많네..]

[ 응, 외국인 사이에 인기가 많아,, 저렴하니까 ]

뭔가 개운한 음식을 먹으면 

입맛을 찾을 것 같아서 초밥집을 택했다.  

와인을 한 잔 하고 싶어 깨달음이랑

둘이 눈치를 좀 살피다 의사 선생님이

완치되는 동안은 삼가라고 우리 둘에게

꼬집어서 했던 말이 생각나

그냥 음료수를 주문했다. 

 

내가 즐겨 먹던 음식들을 하나씩 주문해서 

먹어보는데 어제보다는 훨씬 좋아진

후각 덕분에 고소한 생선살이

입에서 퍼지는 느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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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은 크리스마스 일정에 대한 

얘길 했고 나는 11월에 약속들을 

12월로 다 미뤄둬서 만나야 할 사람들과

마감에 맞춰 보내야 할 원고에 대한 얘길 했다.

2024년도가 한 달하고 반 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렇게 보름을 넘게 코로나로 뺏겨버린

시간들이 너무 아깝다고 했더니

코로나뿐만 아니라 인플루엔자도

지금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뭐가 됐든

다시 걸리지 않게 철저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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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당신 읽고 싶은 책 많이 읽었잖아 ]

[ 그랬지.. 한 강 작가 것은 다 읽었어 ]

[ 어땠어? ]

[ 음,,, 한 번씩 더 읽어봐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면 또 다른 각도에서

작가의 의도가 보일 것 같아서 ]

[ 당신도 책 다시 쓰지 그래? ]

[............................ ]

 내게 책을 다시 쓰라는 말을 불쑥

내뱉는 깨달음의 저의가 보이지 않아

말없이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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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당신도 잘 쓰잖아,, 지금 모아둔 글

정리하면 또 책 한 권 나오지 않을까 해서..]

[ 정리하면 나오겠지.. 근데 너나없이

다들 책 한 권쯤은 출간하는 시대인 것

같아서,,,,그것도 싫어졌어  ]

그래도 꾸준히 글을 써야 하네,,

작가들은 원래 고뇌 속에서 사는 거네..

내 그림 작품과 함께 일본을 접목한

이미지북 같은 것도 좋네..

일본어로 책을 내보라는 등등

아무 말 대잔치처럼 하고 싶은 말들을

계속해서 쏟아냈다.

 

남편이 일본인입니다만

잊고 있었던 건 아니였다. 어제 한국에 있는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고 우두커니 앉아많은 생각에 잠겼다. 우리 부부의 얘기가 담긴 책 [ 남편이 일본인입니다만]을 구입했는데책에 사인을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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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솔직히 많이 불편하다

PCR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왔다. 좀처럼 설사를 하지 않는다는 깨달음이 지난주부터 복통과 함께 속이 불편하다고 했다. 코로나는 아닐 거라며 검사를 차일피일 미루길래 당장 하라고 쓴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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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시집을 나와 집에 가는 길에

역 앞에 있는 대형서점에 들렀다.

말 나온 김에 깨달음도 한 강 씨 책을

읽어야겠다며 내게 어떤 걸 먼저

읽는 게 좋냐고 묻는다.

깨달음에게는 [채식주의자]를

나는 [흰]이라는 산문집을 골랐다.

[ 깨달음, 아까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근데 내년에는 또 내가 다른 할 일이

있어서 힘들 거야,, 그래도 당신이 원한다면

생각은 한 번쯤 해볼게 ]

 

 

돈 앞에서는 일본인도 똑같았다

2주전,아니 올 해를 시작하면서부터 우리 부부에게 머리 아픈 일이 생겼다. 시부모님의 모든 재산을 두분이 요양원으로 들어가셨던 3년전부터 서방님께 맡겨 모든 걸 관리하셨다. 서방님에게 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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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나 글 쓰는데 몰두하는 내 모습을

가장 좋아한다며 조용히 지켜보고 있으면

옆에서 뭐든지 서포트해주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 해진다는 깨달음.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하든 전적으로

도와줄 테니 책이든, 산문집이든, 시집이든

에세이든 뭔가 창작물을 하나 또 낳아보란다.

낳으라고? 그래.. 낳는 거지..

산고의 고통과 견줄만한가 싶다가

어이가 없어 우리는 흔들리는 전철 안에서 

서로를 쳐다보며 소리 죽여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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