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이야, 소포 받았어? ]
[ 아니? ]
[ 배송된 걸로 알림 왔는데..]
[ 미안, 나 지금 밖이거든,
집에 가서 다시 연락할게 ]
[ 그래 ]
멀리 세미나를 왔다.
이젠 참가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세미나인데 예전에 감투를 썼다는 예의로
그냥 얼굴이라도 비춰야 할 것같아 나왔다.
식사로 나온 도시락을 받아들고 5층
휴게소에 들어섰더니 우연인지 다행인지
아무도 없어서 편하게 볕이 드는 창가에 앉았다.
창문밖 아스팔트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밖은 35도,,그래서 결석자가 많았나,,,
도시락 뚜껑을 열어 놓고 뭐부터 먹어야 하는지
젓가락을 들었는데 어느 쪽으로도 손이 가질 않았다.
이젠 논문도 쓰지 않고 그냥
뒷방 늙은이가 되어버렸으니 입장정리를
위해서도 이젠 출석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냥 메일을 주고받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멀게만 느껴져
환승역에서 내려 커피숍에 들어갔다.
달달한 걸 먹어야 할 것 같아 주문했는데
막상 한 입 마셨더니 역시나
블랙커피가 땡겼다.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 파일들을 열어
다시 읽어가는데 머릿속에서
부질없다는 단어가 스쳐 지나길래
핸드폰을 끄고 커피를 새로
주문하러 일어섰다.
생각을 정리할 것도 없이 그냥 현실을
내가 받아들이면 쉽게 끝나는 것이다.
미련 같은 건 추할 수 있어서 끊어낼 것들은
과감히 잘라내는 게 상책이다.
끊어내야 새 싹이 자라고 새로운 기회가
생기는 거라 믿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소포가 두 개가 와 있다.
[ 웬 소포를 보냈어? 갑자기? ]
[ 그냥,,]
[ 미역이,, 완전 산모용이네.ㅎㅎ ]
[ 너,, 산모용 국물 진한 거 좋아한다고 했던 게
생각나서,, 나,, 이번 휴가 때 남편이랑 진도 갔거든,,
그때 니 생각나서 김이랑 미역이랑 샀던 거야 ]
[ 아이고,,, 고마워라,, 근데 꽈배기는 또 뭐야? ]
[ 깨서방 과자 이제 안 먹는다고 해서 쥐포만
샀는데... 그래도 뭔가 서운해서...
그 꽈배기는 순수 보리로 만든 거여서
심심할 때 드셔보라고 넣었지..]
[ 고마워 ]
친구는 손녀가 요즘 말을 안 들어서
죽겠다는 얘기와 딸 내외에게 보태줘서
마련한 아파트가 조금씩 오르고 있어 딸이
많이 좋아한다고 했다.
[ 케이야,, 근데 너 오늘 무슨 있었어? ]
[ 아니..]
[ 목소리에 힘이 없더라,..]
[ 아침부터 일하느라고,,좀 피곤해서..]
[ 아,, 너 블로그 다시 해서 좋더라,,]
[ 뭐가 좋아? ]
[ 소식을 알 수 있으니까 좋지, 그래도
니가 하기 싫으면 하지 마,,]
[ 하기 싫은 건 아니야,,]
진도를 다녀오면서 내게 보낼 것들을 하나씩
챙기고 있었단다. 무슨 일이 있어 블로그에
소식이 없나 싶어 카톡을 하려다가
그냥 바쁜가보다 하고 기다리기로 했단다.
그렇게 6개월을 기다렸는데
다시 새 글이 올라와서 너무 반갑고
고마워 얼른 우체국에 달려갔단다.
[ 독자가 기다려서 다시 쓴 거야? ]
[ 그렇지.. 뭐...]
[ 직업도 아닌데 힘들 긴 하겠다..]
[ 글 쓰는 게 직업이면 어떻게든 억지로
만들어서라도 쓰겠지.. 근데 블로그는 그냥
내 일상을 적는 일기장 같은 것이고,,
그래서 쓰고 싶으면 쓰고,쓰기 싫으면
안 쓰는 정말 말 그대로 일기인데,,,
그만 두는 것도, 쉬는 것도 쉽지가 않네..]
[ 그랬구나..]
[ 혹 다음에 또 내가 말없이 쉬면
일기 쓰기 싫은가보다 하고 생각해,
걱정하지 말고 ]
[ 알았어, 그냥 내버려 둘게 ]
6개월 동안,,난 책 읽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그리고 짬이 나면 악기를 다루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또 주말이면 일부러 옛사람들과 만남을 가졌다.
직접 얼굴을 보며 묵은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미래를 위한 설계와 방향들을 공유하며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갔다.
그렇게 나는 내가 이 사회의 일원임을
재확인하며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래서도 어느 누구에게 읽힐지 모르는
블로그라는 일기장에 구구절절
써 내려갈 시간이 없었고
쓸만한 내용도 결코 아니었다.
그렇게 6개월간, 귀하고 알찬 날들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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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혹여나 제가 다시 일기장을 펼치지
않을 때가 또 오면 마냥 기다리지 마시고
그냥 자기 계발을 위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라고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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